
당신이 매일 지나치는 동네 경로당 앞에 놓인 의자들을 본 적이 있는가. 햇살 좋은 날이면 어르신들이 앉아 시간을 보내는 그 의자들 말이다. 그 의자에 앉은 사람들이 이제 우리 사회 다섯 명 중 한 명이 되었다. 2024년 12월, 한국은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퍼센트를 넘어서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했다.
이 숫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는 정말 알고 있을까. 통계청은 차분하게 발표했고, 언론은 예상된 일이라며 담담하게 보도했다. 하지만 20퍼센트라는 숫자 뒤에 숨은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1970년 불과 3.1퍼센트였던 노인 인구가 반세기 만에 여섯 배 이상 늘어났다는 것은, 우리가 경험한 적 없는 사회로 진입했다는 신호다.
일본의 사회학자 우에노 치즈코는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에서 묻는다. 늙어가는 것이 두려운가, 아니면 늙어가는 방식이 두려운가. 그는 일본이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던 2005년, 이미 이 질문을 던졌다. 한국보다 20년 앞서 같은 문턱을 넘은 일본의 경험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우에노는 병원이나 시설이 아닌 자신의 집에서 죽음을 맞이할 권리를 주장한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히 죽음의 장소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이며, 사회가 개인의 노화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의 문제다. 의료화된 죽음, 시설화된 돌봄이 당연시되는 사회에서 그는 다른 가능성을 탐색한다.
정부는 지역사회 통합돌봄을 첫발로 내딛었다고 발표했다. 살던 곳에서 계속 살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약속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서울과 지방의 격차, 도시와 농촌의 차이는 노인들에게 더욱 가혹하게 다가온다. 양극화라는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삶의 질 자체가 달라지는 현실이 펼쳐지고 있다.
우에노가 주목한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초고령사회는 단순히 노인이 많아지는 사회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노화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결정해야 하는 사회다. 그는 일본의 개호보험제도가 만들어낸 변화와 한계를 세밀하게 추적하면서, 제도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근본적인 질문들을 던진다.
당신은 어디에서 늙어가고 싶은가. 이 질문이 사치스럽게 들린다면, 그것은 우리 사회가 아직 이 질문을 진지하게 다루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초고령사회의 문턱을 넘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통계가 아니라 상상력이다. 20퍼센트가 된 그들이 바로 미래의 우리 자신임을 인식하는 상상력 말이다.
노인 인구 비율이 높아진다는 것은 사회 전체의 속도가 달라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성장과 효율을 최고의 가치로 삼았던 사회가 돌봄과 존엄을 고민해야 하는 사회로 전환되는 과정이다. 이 전환을 위기로만 볼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사회를 상상하는 기회로 삼을 것인가.
우에노의 책은 2015년 한국어로 번역되었다. 그로부터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우리는 일본이 걸었던 그 길목에 서 있다. 다만 우리에게는 한 가지 차이가 있다. 우리는 더 빠른 속도로 늙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이 고령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 가는 데 11년이 걸렸다면, 한국은 7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당신이 오늘 마주친 노인들의 얼굴을 떠올려보라. 그들의 일상이 곧 우리의 미래다. 초고령사회라는 낯선 풍경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통합돌봄이라는 이름의 정책 너머에, 우리 각자가 상상하는 노년은 어떤 모습인가. 이제 그 질문을 피할 수 없는 시간이 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