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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세상을 보다 12월 2째주] 다문화와 권리

차이를 인정한다는 것과 권리를 보장한다는 것의 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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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민족 사회 대한민국
다민족 사회 대한민국
손인서
다민족 사회 대한민국손인서 · 2024

손인서는 자신의 책에서 묻는다. 한국은 정말 다문화 사회인가. 아니, 그보다 먼저 물어야 할 것이 있다. 우리가 말하는 '다문화'란 대체 무엇인가. 그는 한국이 다문화를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동등한 권리 보장이라는 핵심이 빠진 채, 문화적 차이만을 강조하는 기묘한 다문화주의.

이 질문은 뜻밖의 곳에서도 울린다. 근로복지공단이 최근 산재 소송에서 패소하면 원칙적으로 상소를 자제하겠다고 밝혔다. 법원이 인정한 산재를 공단이 끝까지 부정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이 결정이 왜 이제야 나왔을까.

산재 피해자들은 그동안 이중고를 겪어왔다. 다친 몸으로 일터를 떠나야 했고, 그 다음엔 법정에서 자신의 아픔을 증명해야 했다. 1심에서 이겨도 끝이 아니었다. 공단이 항소하면 또다시 기다려야 했다. 불필요한 소송 기간이 길어질수록 피해자의 삶은 더 무너졌다.

권리란 무엇인가. 법이 인정하면 그것으로 충분한가. 아니면 그 권리가 실제로 작동하는 순간까지 기다려야 하는가. 산재 피해자에게 권리란 법원의 판결문이 아니라 제때 받는 치료와 보상이다. 그 사이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권리는 점점 희미해진다.

손인서가 말하는 다문화주의의 핵심도 여기에 있다. 차이를 인정하는 것과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다르다. 한국은 이주민의 문화적 차이는 인정하면서도 그들이 한국인과 동등한 권리를 갖는 것은 꺼린다. 마치 산재를 인정하면서도 보상은 미루는 것처럼.

통합돌봄법도 비슷한 맥락에서 읽힌다. 여야 합의로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했지만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돌봄노동자의 권리 보장을 명시했다지만, 예산과 인력 확보 없이 그 권리가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까. 법안에 적힌 권리와 현실에서 작동하는 권리 사이의 간극.

우리는 종종 착각한다. 법이나 제도가 만들어지면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하지만 권리는 선언되는 순간이 아니라 실행되는 순간에 비로소 존재한다. 산재 피해자가 제때 치료받을 때, 이주민이 차별받지 않고 일할 수 있을 때, 돌봄노동자가 정당한 대우를 받을 때.

근로복지공단의 결정이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순히 상소를 자제하겠다는 선언이 아니다. 권리를 인정받기 위해 불필요하게 소모되던 시간과 에너지를 돌려주겠다는 약속이다. 작은 변화처럼 보이지만, 피해자들에겐 삶을 바꾸는 결정이다.

손인서는 묻는다. 한국이 진정한 다문화 사회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차이를 인정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그 차이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동등한 권리를 갖도록 하는 것.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권리는 기다리는 자의 것이 아니다. 지금 여기서 작동해야 한다. 산재 피해자에게도, 이주민에게도, 돌봄노동자에게도. 우리가 만든 제도와 법이 누군가의 삶을 실제로 바꿀 수 있을 때, 그때 비로소 권리는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다.

산업재해 승인율
출처: 근로복지공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