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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세상을 보다 12월 2째주] 돌봄의 무게

통합돌봄법 시행을 앞두고 읽는 『돌봄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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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요약

작년 한 해 동안 요양보호사가 돌본 노인은 85만 명. 이들을 돌보는 요양보호사는 약 52만 명이다. 한 사람이 평균 1.6명을 돌보는 셈이지만, 현장에서 체감하는 무게는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다. 내일부터 시행될 통합돌봄법을 앞두고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선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돌봄은 언제부터 '노동'이 되었을까. 어머니가 아이를 씻기고,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모시던 일은 그저 가족의 일상이었다. 그것이 요양보호사의 업무가 되고, 간병인의 직업이 되는 순간 비로소 우리는 돌봄의 가격표를 보게 되었다. 시간당 만 원 남짓. 누군가의 몸을 씻기고, 밥을 먹이고, 대소변을 치우는 일의 값이다.

『돌봄 선언』(2021)에서 더 케어 컬렉티브는 묻는다. 돌봄이 시장에 맡겨질 때 무엇이 사라지는가. 저자들은 신자유주의가 돌봄을 상품화하면서 역설적으로 돌봄의 본질을 훼손했다고 지적한다. 돌봄은 단순히 신체를 관리하는 행위가 아니라 서로의 취약함을 인정하고 의존을 받아들이는 관계의 실천이기 때문이다.

통합돌봄법이 통과되기까지 10년이 걸렸다. 그 사이 한국의 65세 이상 인구는 600만에서 1000만으로 늘었다. 돌봄이 필요한 사람은 늘었지만, 돌보는 사람의 처우는 나아지지 않았다. 요양보호사의 월평균 임금은 여전히 최저임금 수준을 맴돈다. 이직률은 해마다 30퍼센트를 넘는다.

법안에는 돌봄노동자의 권리 보장이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현장의 노동자들은 여전히 불안하다. 권리를 보장한다는 문구만으로는 하루 8시간 이상 누군가의 배설물을 치우며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현실이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예산은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전담 인력은 누가 교육할 것인가. 구체적인 답은 아직 없다.

더 케어 컬렉티브는 돌봄을 '상호의존의 정치'로 재정의한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돌봄을 받아야 할 존재들이다. 태어날 때도, 늙어갈 때도, 아플 때도 누군가의 손길 없이는 살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돌봄은 특별한 누군가의 일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일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돌봄은 여전히 여성의 일, 가난한 사람의 일, 이주민의 일로 떠넘겨진다. 2023년 기준 요양보호사의 95퍼센트가 여성이다. 평균 연령은 60세. 자신도 돌봄이 필요한 나이에 남을 돌보며 생계를 이어간다.

책은 돌봄의 위기가 곧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경고한다. 서로를 돌보지 않는 사회에서 연대와 공감은 불가능하다. 각자도생의 논리가 지배하는 곳에서 공동체는 해체된다. 통합돌봄법 시행이 이 위기를 멈출 수 있을까.

처음 던진 숫자로 돌아가 보자. 52만 명의 요양보호사가 85만 명을 돌본다. 하지만 이 52만 명을 돌보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들의 허리가 아플 때, 그들의 마음이 지칠 때, 그들을 돌볼 체계가 우리 사회에 있는가. 통합돌봄법은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돌봄은 단순히 복지 예산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어떤 사회에서 살고 싶은가의 문제다. 서로의 취약함을 외면하지 않고, 의존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돌봄을 권리로 인정하는 사회. 『돌봄 선언』이 꿈꾸는 그런 사회 말이다.

기사는 요양보호사 52만 명이 노인 85만 명을 돌보는 현실 속에서 통합돌봄법 시행을 앞두고 돌봄노동의 위기를 조명한다. 신자유주의가 돌봄을 상품화하면서 본질을 훼손했으며, 돌봄노동자들의 처우 개선과 권리 보장이 실질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작년 한 해 동안 요양보호사가 돌본 노인은 85만 명. 이들을 돌보는 요양보호사는 약 52만 명이다. 한 사람이 평균 1.6명을 돌보는 셈이지만, 현장에서 체감하는 무게는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다. 내일부터 시행될 통합돌봄법을 앞두고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선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돌봄은 언제부터 '노동'이 되었을까. 어머니가 아이를 씻기고,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모시던 일은 그저 가족의 일상이었다. 그것이 요양보호사의 업무가 되고, 간병인의 직업이 되는 순간 비로소 우리는 돌봄의 가격표를 보게 되었다. 시간당 만 원 남짓. 누군가의 몸을 씻기고, 밥을 먹이고, 대소변을 치우는 일의 값이다.

『돌봄 선언』(2021)에서 더 케어 컬렉티브는 묻는다. 돌봄이 시장에 맡겨질 때 무엇이 사라지는가. 저자들은 신자유주의가 돌봄을 상품화하면서 역설적으로 돌봄의 본질을 훼손했다고 지적한다. 돌봄은 단순히 신체를 관리하는 행위가 아니라 서로의 취약함을 인정하고 의존을 받아들이는 관계의 실천이기 때문이다.

통합돌봄법이 통과되기까지 10년이 걸렸다. 그 사이 한국의 65세 이상 인구는 600만에서 1000만으로 늘었다. 돌봄이 필요한 사람은 늘었지만, 돌보는 사람의 처우는 나아지지 않았다. 요양보호사의 월평균 임금은 여전히 최저임금 수준을 맴돈다. 이직률은 해마다 30퍼센트를 넘는다.

법안에는 돌봄노동자의 권리 보장이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현장의 노동자들은 여전히 불안하다. 권리를 보장한다는 문구만으로는 하루 8시간 이상 누군가의 배설물을 치우며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현실이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예산은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전담 인력은 누가 교육할 것인가. 구체적인 답은 아직 없다.

더 케어 컬렉티브는 돌봄을 '상호의존의 정치'로 재정의한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돌봄을 받아야 할 존재들이다. 태어날 때도, 늙어갈 때도, 아플 때도 누군가의 손길 없이는 살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돌봄은 특별한 누군가의 일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일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돌봄은 여전히 여성의 일, 가난한 사람의 일, 이주민의 일로 떠넘겨진다. 2023년 기준 요양보호사의 95퍼센트가 여성이다. 평균 연령은 60세. 자신도 돌봄이 필요한 나이에 남을 돌보며 생계를 이어간다.

책은 돌봄의 위기가 곧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경고한다. 서로를 돌보지 않는 사회에서 연대와 공감은 불가능하다. 각자도생의 논리가 지배하는 곳에서 공동체는 해체된다. 통합돌봄법 시행이 이 위기를 멈출 수 있을까.

처음 던진 숫자로 돌아가 보자. 52만 명의 요양보호사가 85만 명을 돌본다. 하지만 이 52만 명을 돌보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들의 허리가 아플 때, 그들의 마음이 지칠 때, 그들을 돌볼 체계가 우리 사회에 있는가. 통합돌봄법은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돌봄 선언』이 돌봄의 무게을 바라보는 시선은 표면적 현상 너머의 구조를 향한다. 더 케어 컬렉티브은 개별 사건의 원인을 개인에게 돌리는 대신, 그 사건을 가능하게 만든 사회적 조건을 추적한다. 이런 관점은 반복되는 문제의 근본 원인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돌봄의 무게 문제의 핵심은 제도와 현실 사이의 괴리에 있다. 법과 정책은 존재하지만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거나, 작동하더라도 의도와 다른 결과를 낳는 경우가 빈번하다. 더 케어 컬렉티브이 주목하는 것도 바로 이 간극이다. 설계된 세계와 살아가는 세계 사이의 거리.

돌봄은 단순히 복지 예산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어떤 사회에서 살고 싶은가의 문제다. 서로의 취약함을 외면하지 않고, 의존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돌봄을 권리로 인정하는 사회. 『돌봄 선언』이 꿈꾸는 그런 사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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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를 주목해야하는 이유
1
돌봄노동의 현실

이 기사는 돌봄노동의 위기를 다루며, 85만 명의 노인을 52만 명의 요양보호사가 돌본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2
통합돌봄법 시행과 과제

통합돌봄법 시행을 앞둔 상황에서 돌봄노동자들의 처우 개선과 권리 보장이 실질적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한다.

3
돌봄의 가치 재평가

가족 간 돌봄이 노동으로 인식되면서 돌봄의 가치가 경제적 가치로 환원되는 문제를 제기한다.

요양보호사 연령별 분포
출처: 한국보건사회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