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지난 한 해 동안 누군가를 돌본 적이 있는가. 아이를, 부모를, 아픈 가족을. 그 시간들을 떠올려보면 무엇이 남는가. 피로함인가, 보람인가, 아니면 그 둘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인가.
12월의 끝자락, 국회는 조용히 하나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통합돌봄지원법. 돌봄의 사각지대를 없애고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한다는 취지였다. 그런데 이상하다. 왜 이토록 중요한 법안이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오랜 시간 잠들어 있었을까. 왜 우리는 돌봄을 말하면서도 돌봄노동자의 목소리는 듣지 않았을까.
에바 페더 키테이의 『돌봄: 사랑의 노동』은 이미 20년 전 이 질문을 던졌다. 그는 돌봄을 단순한 노동이 아닌 '의존의 관계'로 정의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돌봄을 받으며 태어나고, 언젠가는 다시 돌봄을 필요로 하는 존재가 된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 보편적 경험을 특별한 누군가의 부담으로만 여기는가.
한국의 돌봄노동자는 2023년 기준 약 89만 명. 이들 중 94%가 여성이다. 평균 임금은 최저임금을 겨우 웃도는 수준. 4대 보험 가입률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숫자는 차갑지만 그 안에는 뜨거운 현실이 있다. 새벽부터 밤까지 타인의 일상을 떠받치는 손들. 그 손들이 없다면 우리 사회는 단 하루도 굴러가지 못할 것이다.
키테이는 묻는다. 돌봄이 정말로 사적 영역의 일인가. 가족의 책임인가. 여성의 숙명인가. 그는 단호히 아니라고 답한다. 돌봄은 '공적 책임'이며 '사회적 연대'의 문제라고. 의존은 약함이 아니라 인간의 조건이라고.
통합돌봄법이 통과되던 날, 한 돌봄노동자는 이렇게 말했다. 재원 확보와 인프라 구축 없이는 또 다른 공염불이 될 것이라고. 그의 우려가 기우일까. 우리는 이미 수많은 좋은 법안들이 현실의 벽 앞에서 무력해지는 것을 보아왔다.
키테이의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이것이다. 돌봄은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것. 돌보는 이도 돌봄을 받으며, 돌봄을 받는 이도 무언가를 돌려준다는 것. 그것은 단순한 거래가 아닌 상호성의 춤이라는 것.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 춤을 외면하는가. 왜 돌봄을 비용으로만 계산하는가. 왜 돌봄노동자의 권리는 늘 뒷전인가. 법안 하나가 통과되었다고 해서 이 질문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2024년이 저물어간다. 새해에는 무엇이 달라질까. 법은 만들어졌지만 우리의 인식은 얼마나 변했을까. 키테이가 20년 전에 던진 질문은 여전히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당신은 오늘 누구의 돌봄을 받았는가. 그리고 누구를 돌보았는가.
아마도 우리가 진정으로 통합된 돌봄을 말할 수 있는 날은, 이 질문이 더 이상 특별하지 않은 날일 것이다. 돌봄이 삶의 일부가 아닌 삶 그 자체임을 인정하는 날. 그날은 과연 올 것인가.
2024년 12월 23일, 통합돌봄법 시행을 하루 앞두고 돌봄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섰다. 재원과 인프라, 그리고 노동자 권리 보장을 요구하는 목소리였다.
법안은 이미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했다. 여야가 합의했다는 수식어까지 달고 있다. 그런데 왜 노동자들은 불안해하는가.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된 시간 동안, 현장에서는 무엇이 일어났던가.
돌봄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누구나 돌봄을 받으며 태어났고, 누군가를 돌보며 살아간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것을 '노동'으로 인정하는 데 이토록 인색한가. 더 케어 컬렉티브가 쓴 『돌봄 선언』은 이 지점을 파고든다. 인간은 독립적 개인이 아니라 상호의존적 존재라는 것. 돌봄은 예외적 상황이 아니라 삶의 본질이라는 것.
통합돌봄법은 돌봄을 체계화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체계만으로 충분할까. 예산 없는 체계, 인력 없는 계획이 과연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노동자들이 우려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법은 만들어졌지만 그것을 뒷받침할 토대가 없다면, 결국 또 다른 공허한 약속이 되고 만다.
한국의 돌봄노동자 처우는 참담하다. 최저임금에 머물러 있고, 고용은 불안정하며, 사회적 인정은 부족하다. 이들이 돌보는 것은 단순히 개인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 가장 소중한 존재들이다. 노인, 장애인, 아동. 이들을 돌보는 손길이 떨고 있다면, 그것은 곧 우리 모두의 위기다.
『돌봄 선언』은 돌봄의 위기가 곧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말한다. 돌봄을 시장에 맡기고,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길 때, 우리는 공동체의 기반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것이다. 통합돌봄법이 진정한 전환점이 되려면, 돌봄을 권리로 인정하고 돌봄노동을 존중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정부는 2025년부터 노인 돌봄 예산을 전년 대비 15퍼센트 증액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다르다. 늘어나는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 예산의 증가율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어떻게 쓰이느냐다. 노동자의 처우 개선 없이, 인프라 구축 없이, 숫자만 늘린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질까.
돌봄은 비용이 아니라 투자다. 『돌봄 선언』의 저자들은 이를 '돌봄 인프라'라고 부른다. 도로나 다리처럼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사회를 지탱하는 필수적인 기반이라는 의미다. 한국 사회는 이제 그 인프라를 제대로 구축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통합돌봄법 시행을 앞둔 노동자들의 외침은 단순한 요구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돌봄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상호의존의 가치를 얼마나 인정하고 있는지를 묻는 질문이다.
『돌봄: 사랑의 노동』이 돌봄의 무게을 바라보는 시선은 표면적 현상 너머의 구조를 향한다. 에바 페더 키테이은 개별 사건의 원인을 개인에게 돌리는 대신, 그 사건을 가능하게 만든 사회적 조건을 추적한다. 이런 관점은 반복되는 문제의 근본 원인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돌봄의 무게 문제의 핵심은 제도와 현실 사이의 괴리에 있다. 법과 정책은 존재하지만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거나, 작동하더라도 의도와 다른 결과를 낳는 경우가 빈번하다. 에바 페더 키테이이 주목하는 것도 바로 이 간극이다. 설계된 세계와 살아가는 세계 사이의 거리.
한국 사회에서 돌봄의 무게은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경제 구조, 인구 변화, 기술 발전, 세대 갈등 등 복합적인 요인과 얽혀 있다. 한 가지 변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복잡성이 정책 입안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든다.
돌봄 없이는 그 누구도 살아갈 수 없다. 그것이 인간 조건의 핵심이다.
이 기사는 통합돌봄지원법 통과를 계기로 한국의 돌봄노동자(89만 명, 94%가 여성)의 저임금과 사회보장 부족 등 돌봄노동의 현실을 다룹니다.
이 기사는 에바 페더 키테이의 저작을 통해 돌봄을 개인 책임이 아닌 사회적 연대의 문제로 재정의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왜 중요한 통합돌봄지원법이 오랫동안 국회에서 지체됐는지, 그리고 우리 사회가 돌봄노동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던 이유를 탐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