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을 올려야 한다고 말한다. 최저임금을 올리면 안 된다고 말한다. 매년 12월이면 되풀이되는 진부한 공방이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무엇을 논쟁하고 있는 것일까.
칼 폴라니는 『거대한 전환』에서 노동이 상품이 되는 순간을 포착했다. 19세기 영국. 시장이 모든 것을 삼켜버리던 시대. 인간의 활동까지 화폐로 교환되기 시작했다. 폴라니는 이를 허구적 상품이라 불렀다. 노동은 원래 상품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2024년 최저임금위원회는 7월까지 난항을 거듭했다. 노동계는 시급 1만 2,000원을 요구했고, 경영계는 동결을 주장했다. 결국 2025년 최저임금은 시급 10,030원으로 결정됐다. 2.5% 인상이다. 이 숫자를 둘러싼 공방은 열 달 동안 이어졌지만, 정작 왜 인간의 노동에 최저 가격이라는 것이 필요한지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폴라니가 그린 19세기 영국의 풍경은 오늘의 한국과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구빈법이 폐지되고 노동시장이 자유화되자, 노동자들은 공장의 부속품이 됐다. 인간의 활동이 시장에서 가격표를 달고 거래되기 시작한 것이다. 폴라니는 이것이 자연스러운 진화가 아니라 국가가 인위적으로 만든 시장이라고 갈파했다.
한국의 최저임금 미만율은 2023년 기준 12.7%에 달한다. 210만 개 사업장에서 최저임금이 적용되지만, 실제로는 300만 명 이상이 법정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보수를 받고 있다는 의미다. 편의점 야간 근무, 배달 플랫폼, 가사 노동의 현장에서 최저임금은 여전히 최고임금이다.
폴라니의 핵심 통찰은 시장의 자기파괴적 성격에 있었다. 노동과 토지, 화폐를 상품으로 취급하면 사회가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사회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반동한다. 노동법과 사회보장제도가 등장한 것이 그 반동의 결과다. 최저임금 역시 시장의 폭력에 대한 사회의 최소한의 방어선이라 할 수 있다.
『거대한 전환』이 임금의 무게을 바라보는 시선은 표면적 현상 너머의 구조를 향한다. 칼 폴라니은 개별 사건의 원인을 개인에게 돌리는 대신, 그 사건을 가능하게 만든 사회적 조건을 추적한다. 이런 관점은 반복되는 문제의 근본 원인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임금의 무게 문제의 핵심은 제도와 현실 사이의 괴리에 있다. 법과 정책은 존재하지만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거나, 작동하더라도 의도와 다른 결과를 낳는 경우가 빈번하다. 칼 폴라니이 주목하는 것도 바로 이 간극이다. 설계된 세계와 살아가는 세계 사이의 거리.
한국 사회에서 임금의 무게은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경제 구조, 인구 변화, 기술 발전, 세대 갈등 등 복합적인 요인과 얽혀 있다. 한 가지 변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복잡성이 정책 입안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든다.
한국의 압축적 근대화는 임금의 무게 분야에서도 독특한 양상을 만들어냈다. 선진국이 수십 년에 걸쳐 겪은 변화를 불과 한 세대 만에 경험하면서, 제도적 성숙 없이 양적 팽창만 이뤄진 측면이 있다.
칼 폴라니의 통찰을 빌리면, 임금의 무게은 단순한 정책 과제가 아니라 사회의 가치관을 묻는 질문이다. 우리가 무엇을 우선시하고 무엇을 감수할 것인지. 이 근본적인 물음에 답하지 않고서는 어떤 해법도 임시방편에 그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방어선이 충분한가. 시급 만 원으로 하루 8시간을 일해도 월급은 세전 209만 원에 그친다. 서울에서 월세를 내고 교통비를 쓰고 끼니를 해결하면 남는 것이 얼마인가. 인상률 소수점을 다투는 동안 놓치고 있는 질문이 있다. 왜 우리 사회는 인간의 하루를 만 원어치로 환산하는 데 익숙해졌는가.
2024년 최저임금 심의가 또 한 번 진통을 겪었다. 노동계는 시급 1만 2천 원을 요구했고, 경영계는 동결을 주장했다. 결국 9,860원으로 결정됐다. 전년 대비 1.7% 인상. 물가상승률 3.6%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치였다. 실질임금 기준으로 보면 삭감이다.
칼 폴라니는 『거대한 전환』에서 노동을 상품으로 취급하는 순간 사회가 붕괴한다고 경고했다. 노동은 인간의 삶 그 자체이며, 시장 가격으로 환원될 수 없다는 것이다. 최저임금 논쟁에서 양측이 놓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9,860원이냐 1만 2천 원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노동을 시급으로 환산하는 체계 자체에 대한 질문이 빠져 있다.
한국 노동시장의 구조를 보면 폴라니의 우려가 현실이 됐음을 알 수 있다. 비정규직 비율 37%, OECD 최고 수준이다. 플랫폼 노동자 220만 명. 이들에게 최저임금은 적용되지 않는다. 배달 한 건에 3,500원을 받는 라이더에게 시급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건당 수수료가 곧 임금이고, 사고가 나면 산재보험도 없다.
폴라니가 분석한 19세기 영국의 구빈법 논쟁이 21세기 한국에서 되풀이되고 있다.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이 노동 의욕을 꺾는다는 논리, 시장에 맡기면 균형이 찾아온다는 믿음. 200년 전에도 틀렸고, 지금도 틀리다. 임금은 숫자가 아니라 존엄의 무게다. 우리는 그 무게를 얼마로 매기고 있는가.
이 기사는 현재 진행 중인 최저임금 논쟁을 다루고 있어, 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관련 통계와 배경 정보를 함께 제공해 더 깊이 있는 이해가 가능하다.
이 이슈의 향후 전개 방향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