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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세상을 보다 1월 4째주] 산업재해

위험을 감춘 일터에서 우리는 무엇을 잃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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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이앵글
트라이앵글
데이비드 폰 드렐
트라이앵글데이비드 폰 드렐 · 2003

서울 구로구의 한 전자부품 공장. 새벽 5시 30분, 형광등이 켜지면 200여 명의 노동자들이 일제히 작업복으로 갈아입는다. 환풍기 소리와 기계음이 뒤섞인 공간에서 하루 10시간씩 같은 자세로 부품을 조립한다. 이곳에서 일하는 김씨는 입사 3년차, 최근 들어 손목 통증이 심해졌지만 병원에 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정부가 소규모 사업장의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 민간 퇴직자와 노사의 역량을 활용하는 새로운 정책을 내놨다. 2025년 8월부터 시행될 이 제도는 전문 인력이 부족한 중소 사업장에 안전관리 노하우를 전수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회의적이다. 제도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는 것이다.

20세기 초 미국. 뉴욕 맨해튼의 트라이앵글 셔츠웨이스트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146명이 목숨을 잃었다. 대부분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여성 이민 노동자들이었다. 공장주가 도난을 막는다며 비상구를 잠가둔 탓이었다. 이 참사는 미국 노동운동사의 분수령이 되었고, 오늘날 산업안전 법규의 토대가 되었다.

역사학자 데이비드 폰 드렐은 『트라이앵글』에서 이 사건을 단순한 재난이 아닌 시스템의 실패로 읽어낸다. 그는 당시 뉴욕이 급속한 산업화 속에서 노동자의 안전을 뒷전으로 미뤘음을 보여준다. 공장주들은 생산성에만 몰두했고, 정치인들은 기업의 편에 섰다. 노동자들은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우리의 일터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2023년 한국의 산업재해 사망자는 874명. OECD 국가 중 최악의 수준이다. 특히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전체 사망자의 80% 이상이 발생한다. 숫자 뒤에는 누군가의 아버지, 어머니, 자녀가 있다.

폰 드렐은 트라이앵글 참사 이후 뉴욕시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추적한다.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섰고, 언론이 진실을 파헤쳤다. 정치인들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다. 결국 미국 최초의 포괄적 노동안전법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는 묻는다. 왜 146명이 죽은 뒤에야 변화가 시작되었는가.

구로구의 공장으로 돌아가보자. 김씨가 일하는 작업대 옆에는 안전수칙이 빼곡히 적혀 있다. 하지만 납기일에 쫓기는 현실에서 그것을 지킬 여유는 없다. 관리자는 생산량만 체크한다. 동료가 쓰러져도 작업은 멈추지 않는다. 안전은 구호로만 존재한다.

트라이앵글 공장의 생존자 로즈 프리드먼은 평생 그날의 기억에 시달렸다. 그녀는 증언했다. 우리는 기계의 부속품처럼 취급받았다고. 그녀의 말은 100년 전 뉴욕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이곳, 우리 곁의 누군가가 매일 경험하는 현실이다.

새벽 5시 30분. 오늘도 구로구의 공장에는 형광등이 켜진다. 노동자들은 묵묵히 자리로 향한다. 정부의 새 정책이 시행되기까지 7개월이 남았다. 그사이 또 누군가는 다치고, 누군가는 죽을지 모른다. 우리는 언제까지 통계로만 그들을 만날 것인가.

50인 미만 사업장 산업재해 사망자 비율
출처: 고용노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