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타 누스바움은 『역량의 창조』에서 한 가지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인간이 가장 연약하고 의존적일 때, 그 돌봄은 누구의 몫인가. 갓 태어난 아이, 병든 노인, 장애를 가진 이들. 이들을 돌보는 일은 오랫동안 가족, 그중에서도 여성의 당연한 의무로 여겨졌다. 누스바움은 이 '당연함' 뒤에 숨은 부정의를 파헤친다.
친환경 가전 브랜드 '이롭'이 30대 주부들 사이에서 급성장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육아와 밀접한 제품들로 시장을 공략했다는 분석이다. 언뜻 평범한 기업 성공 사례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현상은 우리 사회가 돌봄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보여주는 거울이기도 하다.
누스바움의 역량 접근법은 인간의 존엄한 삶을 위해 최소한으로 보장되어야 할 10가지 핵심 역량을 제시한다. 건강과 신체적 안전, 감정, 실천적 이성, 사회적 관계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그녀의 관점에서 돌봄은 단순한 서비스가 아니라 인간 역량의 발현을 가능하게 만드는 토대다. 돌봄 없이는 어떤 역량도 온전히 실현될 수 없다.
한국의 영유아 돌봄 시장은 2024년 기준 약 4조원 규모로 추산된다. 스마트 젖병 소독기와 AI 수면 모니터, 자동 이유식 제조기까지 기술이 돌봄의 빈자리를 메우고 있다. 그러나 누스바움은 경고한다. 돌봄을 시장에 맡기는 순간, 돌봄은 구매력에 따라 차등화되고 취약계층의 아이들은 더 열악한 환경에 놓이게 된다고. 친환경 가전으로 양육 불안을 해소하는 것은 여유 있는 가정만의 선택지일 뿐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돌봄의 책임이 여전히 성별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한국 남성의 육아 시간은 하루 평균 47분으로 OECD 평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누스바움은 돌봄 노동의 불평등한 분배가 여성의 역량 발현을 체계적으로 제한한다고 지적했다. 육아 가전의 주 소비자가 30대 여성이라는 사실은 이 구조적 불평등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스웨덴은 부모 보험 제도를 통해 아버지에게 최소 90일의 유급 육아휴직을 의무화했다. 이 정책 도입 이후 남성의 육아 참여율이 크게 높아졌고, 여성의 경력 단절도 상당 부분 완화됐다. 누스바움이 주장한 공적 돌봄 체계의 실현 사례라 할 만하다. 한국도 2024년부터 배우자 출산휴가를 확대했지만, 실제 사용률은 여전히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역량의 창조』이 돌봄의 시장화을 바라보는 시선은 표면적 현상 너머의 구조를 향한다. 마르타 누스바움은 개별 사건의 원인을 개인에게 돌리는 대신, 그 사건을 가능하게 만든 사회적 조건을 추적한다. 이런 관점은 반복되는 문제의 근본 원인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돌봄의 시장화 문제의 핵심은 제도와 현실 사이의 괴리에 있다. 법과 정책은 존재하지만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거나, 작동하더라도 의도와 다른 결과를 낳는 경우가 빈번하다. 마르타 누스바움이 주목하는 것도 바로 이 간극이다. 설계된 세계와 살아가는 세계 사이의 거리.
한국 사회에서 돌봄의 시장화은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경제 구조, 인구 변화, 기술 발전, 세대 갈등 등 복합적인 요인과 얽혀 있다. 한 가지 변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복잡성이 정책 입안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든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 개인의 소비 행위로 환원될 때, 우리 사회는 무엇을 잃는가. 누스바움의 물음은 단순하지만 날카롭다. 돌봄은 비용인가, 투자인가, 아니면 그 무엇보다 먼저 인간으로서 서로에게 지는 의무인가. 가전제품이 아무리 발전해도 대답해줄 수 없는 질문이다.
고용노동부의 2024년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에 따르면, 여성 육아휴직 사용률은 71.2%로 꾸준히 상승하고 있지만, 남성 육아휴직 사용률은 7.8%에 그치고 있다. 육아휴직 후 원직장 복귀율은 여성 72%, 남성 89%로 성별 격차가 뚜렷하다. 특히 중소기업 여성 노동자의 육아휴직 사용률은 대기업의 절반 수준인 38%에 불과해 기업 규모별 돌봄 격차가 심화되고 있다.
마르타 누스바움은 『역량의 창조』에서 인간의 존엄한 삶을 가능하게 하는 10가지 핵심 역량을 제시했다. 그중 '감정', '실천이성', '관계'는 돌봄과 직결된다. 그의 역량 접근법에서 돌봄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사회가 보장해야 할 기본적 조건이다. 누스바움은 인간의 취약성과 상호의존을 부정하는 사회는 결코 정의로울 수 없다고 단언했다.
누스바움의 분석에서 특히 날카로운 지점은, 돌봄 노동의 가치절하가 시장 논리의 필연적 결과라는 진단이다. 돌봄은 생산성으로 측정하기 어렵고, GDP에 잡히지 않으며, 그래서 보이지 않는 노동으로 취급된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2024년 추산에 따르면 무급 가사·돌봄 노동의 경제적 가치는 연간 약 490조 원으로, 이는 국방예산의 8배에 해당한다.
OECD 국가 중 한국의 공공사회지출 중 가족 부문 비중은 1.4%로 OECD 평균(2.3%)에 크게 못 미친다. 스웨덴(3.4%), 프랑스(2.9%)와 비교하면 차이가 더욱 극명하다. 2025년부터 시행된 육아휴직 급여 상한 인상(월 200만 원→250만 원)은 긍정적이나, 비정규직·자영업자·플랫폼 노동자는 여전히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돌봄 정책의 진정한 전환은 '지원'에서 '권리'로의 패러다임 변화를 요구한다. 누스바움이 던진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아이를 키우고, 부모를 돌보고, 아픈 이웃을 보살피는 행위가 왜 경제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가. 돌봄을 '비용'이 아닌 '투자'로 재정의할 때, 우리 사회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가.
이 기사는 돌봄이 개인이 아닌 사회적 책임이어야 함을 시사한다.
이 기사는 돌봄 책임이 여성에게 전가되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다룬다.
이 기사는 돌봄이 시장화되면서 발생하는 문제점을 지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