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양시가 새로운 벤처생태계 육성사업을 시작했다. 지방투자촉진보조금부터 뿌리산업 선도기업 육성까지, 산업과 주거와 문화가 결합한 복합공간을 만들겠다는 포부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이야기다. 지난 20년간 수많은 지방 도시들이 비슷한 청사진을 그렸다.
2003년 노무현 정부의 지방분권 이후 각 지자체는 앞다투어 산업단지를 조성했다. 혁신도시, 기업도시, 경제자유구역. 이름은 달라도 목표는 같았다. 서울의 인구와 기업을 끌어오겠다는 것. 하지만 2023년 기준 지방 중소도시의 평균 인구감소율은 연 2.3퍼센트다. 젊은이들은 여전히 수도권으로 향한다.
일본의 지리학자 마스다 히로야는 『지방소멸』에서 896개 지자체가 30년 내 사라질 것이라 예측했다. 2014년 출간 당시 충격적이던 이 전망은 이제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228개 기초지자체 중 106개가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된다.
마스다는 묻는다. 왜 모든 지방이 똑같은 해법을 찾는가. 산업단지를 만들고, 대학을 유치하고, 문화시설을 짓는다. 그러나 정작 그 지역만의 고유한 자원과 역사는 외면한다. 표준화된 개발은 오히려 지방의 개성을 지운다.
광양은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포스코 광양제철소가 들어선 1987년, 인구 7만의 작은 도시는 15만의 산업도시로 변했다. 하지만 제철소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도시의 자생력은 약해졌다. 2010년 이후 청년 인구는 매년 3퍼센트씩 감소하고 있다.
도시계획가 제인 제이콥스는 도시의 생명력이 다양성에서 나온다고 했다. 단일 산업에 의존하는 도시는 취약하다. 디트로이트가 자동차 산업의 쇠퇴와 함께 몰락한 것처럼. 광양의 벤처생태계 육성은 이런 위기의식에서 나온 것일까.
하지만 벤처기업은 왜 광양을 선택해야 하는가. 젊은 인재들은 무엇을 보고 이 도시에 정착할 것인가. 보조금과 세제 혜택만으로는 부족하다. 도시는 일하는 곳이기 전에 사는 곳이다.
마스다는 지방 재생의 열쇠로 '선택과 집중'을 제시한다. 모든 것을 다 하려 하지 말고, 그 지역만이 가진 강점 하나를 극대화하라는 것. 스위스의 다보스는 인구 1만의 작은 마을이지만 세계경제포럼으로 전 세계가 주목한다. 일본의 가마쿠라는 IT 기업들이 모여드는 '가마쿠라 밸리'가 되었다. 바다와 역사가 있는 소도시의 삶의 질이 창의적 인재들을 끌어들인 것이다.
광양시의 새로운 시도가 또 하나의 실패 사례가 될지, 아니면 지방 도시의 새로운 모델이 될지는 아직 모른다. 분명한 것은 과거의 방식으로는 미래를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이다. 산업단지를 넘어 사람이 살고 싶은 도시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이것이 광양만이 아니라 한국의 모든 지방 도시가 직면한 질문이다.
답은 어쩌면 거창한 청사진이 아니라 작은 일상의 변화에 있을지 모른다. 청년들이 걷고 싶은 거리,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공원, 퇴근 후 들를 수 있는 서점과 카페. 도시의 매력은 그런 것들의 총합이다. 광양의 실험이 이런 근본적 질문에 답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