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의 하루는 몇 개의 역할로 쪼개져 있는가. 직장인, 부모, 자녀, 배우자. 이 중 하나라도 비어 있다면 그 빈자리는 누가 채우는가. 여성가족부가 한부모가족을 위한 복지서비스 안내서를 발간했다. 필요한 서비스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돕겠다는 취지다.
안내서의 존재 자체가 역설이다. 복지가 복잡해서 안내서가 필요하다는 것은, 그만큼 한부모가족이 헤쳐나가야 할 미로가 깊다는 뜻 아닌가. 서류 더미와 신청 절차, 자격 요건의 벽.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것도 벅찬데, 국가의 도움을 받으려면 또 다른 전투를 치러야 한다.
앨리 러셀 혹실드는 《감정노동》에서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보이지 않는 노동을 파헤쳤다. 비행기 승무원의 미소 뒤에 숨겨진 감정 관리, 서비스직 노동자들이 수행하는 연기. 그런데 한부모는 어떤가. 아이 앞에서는 든든한 부모 역할을, 직장에서는 완벽한 직원 역할을, 복지 창구에서는 자격을 증명해야 하는 신청자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혹실드가 말하는 감정노동이 직업적 맥락에서 논의됐다면, 한부모의 감정노동은 생존의 차원에서 작동한다. 아이에게 결핍을 느끼게 하지 않으려는 노력, 사회적 시선을 견디며 평정심을 유지하려는 노력, 복잡한 제도 앞에서 좌절하지 않으려는 노력. 이 모든 것이 24시간 계속된다.
한국의 한부모가구는 2023년 기준 약 153만 가구다. 이 중 여성 한부모가구가 79.6%를 차지한다. 숫자만으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매일 아침 아이를 깨우고, 도시락을 싸고, 출근하고, 퇴근 후 학원을 데리러 가고, 숙제를 봐주고, 잠을 재우는 일상. 그 사이사이 끼어드는 예측 불가능한 변수들.
복지 안내서가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있고,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 경제적 지원은 분명 도움이 되지만, 고독의 무게까지 덜어줄 수는 없다. 아이가 아플 때 함께 고민할 사람의 부재, 육아의 결정을 혼자 내려야 하는 압박, 미래에 대한 불안을 나눌 곳 없는 막막함.
혹실드는 감정노동이 상품화되는 과정에서 인간의 진정성이 소외된다고 봤다. 그렇다면 한부모의 감정노동은 어떤 대가를 치르고 있는가. 늘 강해 보여야 한다는 압박이 진짜 감정을 억누를 때, 도움을 요청하는 것조차 자존심 상하는 일이 될 때, 우리 사회는 무엇을 잃고 있는가.
안내서 한 권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지 않다. 복지 제도를 쉽게 설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왜 그토록 복잡해졌는지 묻는 것도 필요하다. 한부모가족이 겪는 어려움을 개인의 문제로 볼 것인가, 사회 구조의 문제로 볼 것인가.
당신이 만약 혼자 아이를 키운다면, 오늘 하루 몇 번의 감정노동을 수행했는가. 그리고 그 대가는 무엇이었는가. 복지 안내서가 닿지 않는 그 지점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