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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세상을 보다 3월 2째주] 청년 주거

도심의 빈 공간과 청년들의 좁은 방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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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자의 미학
빈자의 미학
승효상
빈자의 미학승효상 · 1996

3월 11일 서울 중구의 한 오피스 빌딩. 30층 건물의 절반이 비어있다. 같은 시각, 신림동 고시원에서 한 청년이 1.5평 방에서 아침을 맞는다.

서울 도심 공실률이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는 보도가 이어진다. 재택근무 확산, 기업 구조조정, 상권 이동. 이유는 다양하다. 텅 빈 사무실들이 늘어가는 동안, 청년들은 여전히 좁은 방에서 살아간다.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 주거의 최소 기준조차 충족하지 못하는 공간들이다.

폐교를 청년 주거 공간으로 바꾸자는 제안이 나왔다. 학령인구 감소로 문 닫는 학교들. 도심 곳곳의 빈 사무실들. 활용 방안을 놓고 논의가 시작됐다. 그런데 왜 이제야일까. 공간은 남아돌고 주거는 부족한 이 모순을 우리는 얼마나 오래 방치해왔는가.

건축가 승효상은 『빈자의 미학』에서 묻는다. 건축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화려한 외관과 거대한 규모 뒤에 가려진 삶들. 그는 '비움'의 건축을 말한다. 채우려 하지 않고 비워두는 것. 그 빈 공간에 삶이 스며들게 하는 것.

책은 1996년에 쓰였다. 거의 30년이 지났지만 질문은 여전하다. 우리의 도시는 누구를 위한 공간인가. 높이 솟은 빌딩들과 좁디좁은 원룸들. 그 격차는 왜 좁혀지지 않는가.

청년 1인 가구의 평균 주거 면적은 29.7제곱미터다. 9평이 채 안 된다. 반면 서울 오피스 공실률은 11%를 넘어섰다. 수백만 제곱미터가 비어있다. 숫자가 말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공간의 문제가 아니라 분배의 문제라는 사실 아닌가.

건축은 권력의 언어다. 누가 어디에 살 수 있는지를 결정한다. 승효상은 그 언어를 바꾸려 했다. 작고 소박하지만 품위 있는 공간. 돈이 없어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건축. 그가 꿈꾼 것은 유토피아가 아니라 최소한의 품격이었다.

도심 재생, 청년 주거, 공간 혁신. 정책 용어들이 난무한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따로 있지 않을까. 한 사람이 제대로 설 수 있는 공간. 숨 쉬고 생각하고 꿈꿀 수 있는 최소한의 터전.

텅 빈 빌딩과 빽빽한 고시원 사이. 그 간극에 우리 사회의 모순이 응축되어 있다. 공간은 남아도는데 갈 곳은 없다. 이 역설을 어떻게 풀 것인가.

건축은 삶을 담는 그릇이다. 그릇이 작으면 삶도 작아진다.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잠자리가 아니다. 서고 걷고 숨 쉴 수 있는 공간. 그것이 인간다운 삶의 시작 아닐까.

서울 청년 1인 가구 거주 유형별 비율
출처: 서울시 청년주거실태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