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후 집중 읽기 모드로 전환됩니다

[책으로 세상을 보다 3월 4째주] 청년의 공간

도심의 빈 건물과 청년의 좁은 방 사이에서

기사 듣기
쫓겨난 사람들
쫓겨난 사람들
매슈 데스먼드
쫓겨난 사람들매슈 데스먼드 · 2016

당신이 매일 출퇴근하며 지나치는 건물들을 떠올려 보시라. 불 꺼진 사무실, 임대 안내문이 붙은 상가, 텅 빈 층들. 그런데 퇴근길에 들르는 편의점 알바생은 오늘도 고시원으로 돌아간다. 이상하지 않은가. 도시에는 공간이 넘쳐나는데, 청년들은 더 좁은 곳으로 내몰리고 있다.

서울 도심의 공실률이 높아지고 있다는 뉴스를 봤다. 재택근무가 일상화되면서 기업들이 사무실을 줄이고, 상권이 이동하면서 빈 가게들이 늘어난다. 동시에 저출산으로 문 닫는 학교들도 생겨났다. 도시 곳곳에 구멍이 뚫리고 있는 셈이다.

그 구멍들을 청년 주거 공간으로 채우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폐교를 셰어하우스로, 빈 사무실을 원룸으로 전환하자는 것. 합리적으로 들린다. 남는 곳과 부족한 곳을 연결하면 되니까. 하지만 왜 청년들에게는 늘 '남은 공간'만 주어지는가.

매슈 데스먼드의 『쫓겨난 사람들』은 미국 밀워키의 퇴거 현장을 8년간 추적한 기록이다. 저소득층이 집에서 쫓겨나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집주인과 세입자, 법원과 보안관, 이사 트럭과 창고. 퇴거는 단순히 집을 잃는 일이 아니었다. 삶의 기반 전체가 무너지는 일이었다.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퇴거 통지를 받은 한 여성의 독백이다. 내 물건들이 길거리에 나뒹굴 것이고, 아이들은 학교를 옮겨야 하고, 직장도 잃을지 모른다. 그녀에게 집은 단지 잠자는 곳이 아니었다. 삶을 지탱하는 모든 연결고리의 중심이었다.

한국의 청년들은 어떤가. 고시원, 원룸, 오피스텔을 전전하며 산다. 계약 기간은 짧고, 보증금은 부담스럽고, 월세는 오른다. 폐교를 개조한 셰어하우스가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빈 사무실을 바꾼 원룸이 해법일까. 아니면 또 다른 '임시 거처'에 불과할까.

데스먼드는 말한다. 안정적인 주거가 없으면 안정적인 삶도 없다고. 그런데 우리는 청년들에게 계속 불안정을 요구한다. 도심의 남은 공간에서 살다가, 결혼하면 신도시로 가라고. 그때까지는 참고 버티라고. 정말 그래야만 하는가.

지난해 서울시가 발표한 '청년 주거 정책'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역세권 청년주택, 대학 기숙사 확충, 월세 지원. 모두 필요한 정책들이다. 하지만 왜 청년에게는 '지원'만 있고 '권리'는 없는가. 왜 청년의 집은 늘 '해결해야 할 문제'로만 다뤄지는가.

도시의 빈 공간과 청년의 주거 문제를 연결하는 발상은 실용적이다. 하지만 그 실용성 뒤에 숨은 전제를 봐야 한다. 청년은 임시로 머무는 존재, 도시의 잉여 공간을 채우는 존재라는 전제 말이다.

청년들이 진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폐교를 개조한 멋진 셰어하우스일까, 아니면 그냥 평범하고 안정적인 집일까. 도심의 빈 건물들을 보며 다시 묻게 된다. 이 도시는 누구를 위한 공간인가. 그리고 청년들은 언제쯤 '임시'가 아닌 '거주자'가 될 수 있을까.

서울 청년 1인가구 주거형태별 비율
출처: 서울시 청년주거실태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