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도심 오피스 공실률이 8.5%를 넘어섰다. 2024년 4분기 기준이다. 강남권은 10%대로 치솟았고, 도심권도 7%대 후반을 기록했다. 텅 빈 사무실이 늘어나는 동안, 같은 도시의 청년들은 월세 100만원짜리 원룸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른다.
이상한 일이다. 한쪽엔 남아도는 공간이, 다른 한쪽엔 공간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왜 만나지 못하는가. 규제 때문이라고들 한다. 용도지역제의 경직성이나 건축법의 제약을 탓한다. 하지만 정말 그것뿐일까.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서 이탈로 칼비노는 마르코 폴로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도시는 욕망으로 이루어져 있고, 또한 두려움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오피스 빌딩 소유주들의 욕망은 무엇인가. 높은 임대료다. 청년들의 두려움은 무엇인가. 내일도 이 도시에서 쫓겨나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다.
빈 사무실을 주거 공간으로 바꾸는 일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화장실과 샤워실을 늘려야 하고, 채광과 환기 기준도 맞춰야 한다. 개조 비용이 만만치 않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사무실이 주택이 되는 순간, 그 건물의 '격'이 떨어진다고 믿는 시선들이다.
도시계획은 본래 계급적이었다. 조닝(zoning)이라는 개념 자체가 '바람직한' 용도와 '바람직하지 않은' 용도를 구분하는 데서 출발했다. 주거지역과 상업지역을 나누는 건 단순히 기능의 문제가 아니었다. 누가 어디에 살 자격이 있는지를 정하는 문제였다.
청년들은 지하방과 옥탑방, 고시원과 쪽방을 전전한다. 2023년 기준으로 서울에 거주하는 20~30대 1인 가구 중 23.7%가 주거 빈곤 상태다.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곳에서 산다는 뜻이다. 그들에게 도시는 머물 곳이 아니라 잠시 거쳐가는 곳이다.
칼비노의 도시들은 모두 여성의 이름을 갖고 있다. 제노비아, 이시도라, 도로테아... 그는 도시를 여성으로 본 것일까. 아니면 도시에서 배제된 존재들을 떠올린 것일까. 빈 사무실이 가득한 도시에서 방 하나 구하지 못하는 청년들도 그런 존재들이다.
영국에서는 최저임금이 10% 오른다. 그러자 파운드랜드 같은 저가 소매점들이 줄줄이 매각을 검토한다. 인건비 부담 때문이다. 한국은 어떤가. 2025년 최저임금은 시간당 10,030원이다. 전년 대비 1.7% 인상이다. 청년들은 이 돈으로 도시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공간은 중립적이지 않다. 비어 있다고 해서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게 아니다. 도시는 끊임없이 선별하고 배제한다. 높은 천장과 통유리로 둘러싸인 텅 빈 사무실들이 청년들의 보금자리가 될 수 없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공간의 용도를 바꾸는 일은 결국 누가 이 도시의 정당한 구성원인지를 다시 묻는 일이기 때문이다.
8.5%라는 숫자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왜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공간이 가지 않는가. 하지만 답은 복잡하다. 도시가 품고 있는 욕망과 두려움, 그리고 오래된 계급의식이 거기 얽혀 있기 때문이다. 빈 사무실이 늘어나고 청년들이 떠돌아다니는 도시. 그것이 2025년 서울의 초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