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의 부모님이 거동이 불편해진다면 누가 그들을 진료할 것인가. 병원에 갈 수 없는 이들을 위해 의사가 직접 찾아간다는 방문진료. 정부는 2025년부터 의사 수를 3570명으로 늘린다고 발표했다. 전국 29개 재택의료센터를 중심으로 24시간 체제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그런데 왜 지금일까. 고령화가 가속화되는 시점에서 나온 이 정책은 단순한 의료 서비스 확대가 아니다. 병원 중심의 의료체계가 한계에 도달했음을 인정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현대 의학이 놓친 지점을 파고든다. 하버드 의대 교수이자 외과의사인 저자는 의료가 생명 연장에만 집중하다 정작 환자의 삶을 외면했다고 지적한다. 수술실과 중환자실에서 보낸 시간들. 그 속에서 의사들은 무엇을 놓쳤는가.
책은 말기 암 환자 세라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항암치료를 거부하고 집으로 돌아간 그녀. 의료진은 당황했지만 세라는 남은 시간을 가족과 보내기를 원했다. 병원이 아닌 집에서, 기계음이 아닌 가족의 목소리를 들으며. 가완디는 묻는다. 의료의 목적은 무엇인가. 생명을 연장하는 것인가, 아니면 삶을 돌보는 것인가.
방문진료 확대안은 이 질문과 맞닿아 있다. 병원에 올 수 없는 환자를 위해 의사가 움직인다는 발상의 전환.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의사 1000명당 2.5명에 불과한 한국의 의사 밀도. 3570명이 늘어난다 해도 수요를 감당할 수 있을까.
통계는 더 깊은 고민을 던진다. 한국의 가정의학과 전문의 수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젊은 의사들은 왜 일차 진료를 외면하는가. 수익성이 낮고 사회적 인정도 부족한 현실. 방문진료는 더욱 그렇다. 환자 집까지 가는 시간, 이동 비용, 제한된 진료 수가. 누가 이 일을 자원할 것인가.
가완디는 호스피스 의료진을 따라다니며 깨달음을 얻는다. 죽음을 앞둔 환자들이 원하는 것은 최신 치료법이 아니었다. 존엄한 마지막, 고통 없는 시간, 사랑하는 이들과의 작별. 의료가 놓친 것은 바로 이 지점이었다.
방문진료가 단순히 의료 접근성을 높이는 정책으로만 읽힌다면 절반의 이해다. 이는 의료의 본질을 다시 묻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병원 밖에서도 치료가 가능하다면, 의료란 무엇인가. 의사의 역할은 어디까지인가.
정책은 발표됐지만 준비는 되었는가. 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싼 갈등이 여전한 시점. 양적 확대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있다. 누가 농어촌으로 갈 것이며, 누가 새벽에 환자 집을 찾을 것인가. 의료 시스템의 근본적 재설계 없이 가능한 일인가.
병원이 아닌 곳에서 아픈 이들을 돌본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의료가 잃어버린 초심을 되찾는 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길을 걸을 의사들은 준비되어 있는가. 우리 사회는 그들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 방문진료 확대안이 던진 질문은 여기서 시작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