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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세상을 보다 4월 2째주] 디지털 전환의 그늘

기술이 약속하는 미래와 잊혀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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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감옥
유리감옥
니콜라스 카
유리감옥니콜라스 카 · 2014

애큐온캐피탈이 디지털 전환 고도화를 완성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같은 날, 어느 동네 은행에서는 ATM 앞에 선 노인이 화면을 오래 들여다본다.

금융의 디지털화는 멈추지 않는다. 모바일 앱으로 대출을 받고, AI가 신용을 평가한다. 효율적이고 빠르다. 그런데 왜 불안한가. 기술이 더 나은 삶을 만든다는 약속은 언제나 반쪽짜리였다.

니콜라스 카의 『유리감옥』은 자동화가 인간을 어떻게 무력하게 만드는지 추적한다. 비행기 조종사들이 자동항법에 익숙해질수록 수동 조종 능력을 잃어간다. 의사들이 진단 프로그램에 의존할수록 직관이 무뎌진다. 편리함의 대가는 역량의 상실이다.

금융도 다르지 않다. 대면 창구가 사라지고 앱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젊은 세대에게는 자연스러운 변화다. 하지만 스마트폰 조작이 서툰 이들에게 이 전환은 배제의 다른 이름이다. 디지털 격차는 단순히 기술 활용 능력의 차이가 아니다. 일상에서 소외되는 속도의 차이다.

카는 묻는다. 우리가 기계에 일을 맡길 때 무엇을 잃는가. 그것은 단지 기술이나 지식이 아니다.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능력, 실수를 통해 배우는 기회, 불완전함 속에서 성장하는 경험이다. 완벽한 시스템은 불완전한 인간을 위한 자리를 남기지 않는다.

한국의 디지털 금융 이용률은 2019년 46.6%에서 2024년 71.2%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금융 소외 계층은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더 깊은 곳으로 밀려났을 뿐이다. 보이지 않는다고 사라진 것은 아니다.

자동화는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는 환상을 심는다. 그러나 카가 지적하듯, 우리는 기계가 만든 유리감옥에 갇힌다. 투명해서 보이지 않고, 편리해서 벗어나고 싶지 않은 감옥. 스스로 들어가는 감옥이 가장 견고하다.

디지털 전환의 속도는 가속화될 것이다. 의료AI, 자율주행, 로봇 상담원이 일상이 될 것이다. 그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니, 무엇을 하고 싶어할까. 기술이 모든 것을 대신해주는 세상에서 인간다움은 어디에 있을까.

애큐온의 디지털 고도화 소식을 다시 본다. 성공 스토리 뒤에 가려진 이야기들을 생각한다. 창구 직원들은 어디로 갔을까. ATM 앞에서 망설이던 노인은 결국 집으로 돌아갔을까.

진보는 항상 누군가를 뒤에 남긴다. 그것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다만 앞만 보며 달려가는 동안, 뒤를 돌아볼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술의 미래를 논하기 전에, 기술이 만드는 현재를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디지털 금융 이용률
출처: 한국은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