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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세상을 보다 4월 3째주] 최저임금의 그림자

장애인 월평균 임금 37만원이 말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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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하다는 착각
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 샌델
공정하다는 착각마이클 샌델 · 2020

37만원. 2023년 기준 장애인의 월평균 임금이다. 같은 해 비장애인 임금의 13.5%에 불과하다. 이 숫자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단순히 적다고만 할 수 있을까. 아니면 이것이 우리가 만들어낸 체계의 필연적 결과일까.

장애인 고용 의무가 있는 기업들이 고용 대신 부담금을 선택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더 싸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의 60% 수준인 부담금을 내는 것이 실제 고용보다 경제적이라는 계산.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 제도가 만든 역설인가, 아니면 제도 자체가 품고 있던 의도인가.

최저임금 적용 제외. 이 네 글자가 만들어내는 현실은 생각보다 무겁다. 보호작업장에서 일하는 장애인들에게 최저임금은 남의 이야기다. 그들의 노동은 '생산성'이라는 잣대로 측정되고, 그 측정값은 늘 미달이다. 하지만 누가 그 생산성을 정의하는가. 무엇을 기준으로 하는가.

마이클 샌델은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능력주의 사회가 만들어내는 배제의 메커니즘을 파헤친다. 그는 묻는다. 과연 우리가 가진 재능과 능력이 온전히 우리의 것인가.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조건들, 성장 과정에서 만난 기회들, 이 모든 것이 뒤섞여 만들어진 '능력'을 개인의 공과로만 돌릴 수 있는가.

샌델의 질문은 장애인 고용 현장에서 더욱 날카로워진다. 비장애인 중심으로 설계된 작업 환경에서 측정되는 '생산성'이 과연 공정한 잣대인가.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는 작업장, 수어 통역이 없는 회의실, 점자 자료가 준비되지 않은 교육. 이런 조건에서 측정된 생산성으로 임금을 결정하는 것이 정당한가.

능력주의는 성공한 사람들에게 오만을, 실패한 사람들에게 굴욕을 남긴다고 샌델은 지적한다. 하지만 장애인 노동 현장에서는 이 구도조차 성립하지 않는다. 애초에 경쟁의 출발선에 서지 못한 이들에게 능력주의의 논리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그것은 배제를 정당화하는 도구가 될 뿐이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통계를 보면, 장애인 고용률은 지난 10년간 2.5%에서 3.1%로 0.6%포인트 상승했다. 미미한 증가다. 더 주목할 점은 고용부담금 납부 기업이 여전히 절반을 넘는다는 사실이다. 제도는 있되 작동하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이렇게 작동하도록 설계된 것인지도 모른다.

37만원이라는 숫자로 돌아가보자. 이것은 단순한 임금 격차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노동의 가치를 어떻게 매기는지, 누구의 노동을 인정하고 누구의 노동을 지워버리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샌델이 말하는 '공정하다는 착각'이 가장 잔인하게 드러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최저임금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이 존재한다는 것. 그것이 제도적으로 용인된다는 것. 이것이 2025년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우리는 이 현실 앞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제도를 바꾸는 것만으로 충분할까. 아니면 노동과 가치에 대한 우리의 인식 자체를 돌아봐야 할까.

37만원. 이 숫자는 질문한다. 당신이 생각하는 공정은 무엇인가. 당신이 믿는 능력주의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리고 우리는 언제까지 이 질문을 외면할 것인가.

장애인 고용률 추이
출처: 한국장애인고용공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