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이집 앞 게시판에는 봄 소풍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5월 가족의 달을 앞두고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갈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런데 한 교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이번에도 민수는 참석하지 못하는 걸까요? 민수는 늘 단체 활동에서 빠졌다. 보험 가입이 안 되기 때문이었다.
권인숙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미등록 이주 아동들이 스스로 체류 신청을 할 수 없는 현실을 개선하자는 내용이다. 출입국 사무소 직원이 대신 신청하거나, 어린이집 종사자들의 신고 의무를 면제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하지만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누가 이 아이들의 존재를 먼저 인지할 것인가? 그들을 발견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프란츠 카프카의 <소송>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주인공 K는 어느 날 아침 체포된다. 무슨 죄인지 알 수 없다. 법정은 도시 곳곳의 다락방에 숨어 있고, 재판 절차는 미로 같다. K는 자신이 무엇을 위반했는지도 모른 채 법의 그물에 걸려든다. 1925년에 출간된 이 소설이 여전히 읽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등록 아동들도 비슷한 처지다. 태어나면서부터 법의 바깥에 있다. 부모가 체류 자격을 잃으면 아이도 함께 불법이 된다. 아이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그저 한국에서 태어났을 뿐이다. 하지만 시스템은 이들을 투명인간 취급한다. 주민등록번호가 없으니 병원에서 예방접종 기록도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다.
법안은 이런 아이들에게 최소한의 통로를 열어주려 한다. 그런데 묘한 역설이 숨어 있다. 신고 의무를 면제받은 어린이집 교사는 미등록 아동을 '알면서도 모른 척'해야 한다. 출입국 직원이 대신 신청한다면, 그 순간 아이의 불법 체류 사실이 공식 기록에 남는다. 보호와 단속의 경계는 어디인가?
한국에 체류하는 미등록 아동 수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는다. 2022년 교육부 조사에서는 약 2,800명으로 추산됐지만, 실제로는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학교에 다니지 않는 아이들은 통계에도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2019년 571명에서 2022년 2,800명으로 증가한 수치도 발견된 아이들이 늘어난 것일 뿐, 실제 증가를 의미하는지는 불분명하다.
카프카는 관료제의 부조리를 통해 인간 존재의 불안을 그렸다. 시스템은 작동하지만 그 안의 사람은 길을 잃는다. 미등록 아동들의 삶도 마찬가지다. 한국 사회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제도적으로는 없는 사람들이다. 학교에 가고, 친구를 사귀고, 한국어로 꿈을 꾸지만 언제든 추방될 수 있는 유령 같은 존재들이다.
어린이집 교사는 매일 이런 아이들을 만난다.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웃고, 울고, 자란다. 하지만 소풍날이면 빠진다. 수학여행도 갈 수 없다. 교사는 알면서도 묻지 않는다. 부모는 아이에게 '조용히 살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것이 과연 아동 보호일까?
법안의 실효성 논란은 더 큰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정말로 이 아이들을 보호하고 싶은가? 아니면 그저 보이지 않기를 바라는가? 신고 의무 면제는 묵인을 합법화하는 것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아이들은 여전히 제도의 틈새에 머문다.
민수가 다니는 어린이집 앞을 다시 지나갔다. 소풍 안내문은 그대로였지만, 이제는 다르게 읽혔다. 거기에는 참석할 수 있는 아이들의 명단만 있을 뿐, 올 수 없는 아이들의 이름은 처음부터 없었다. 없는 것처럼 있는 아이들. 우리 사회가 그들에게 허락한 유일한 존재 방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