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후 집중 읽기 모드로 전환됩니다

[책으로 세상을 보다 5월 1째주] 장애인 노동

최저임금 예외라는 이름의 차별

기사 듣기
기사요약

장애인은 일할 수 있다. 그런데 최저임금을 받을 자격은 없다고 한다. 이 문장의 앞뒤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한국일보 한준규 부장이 지적한 '장애인 노동에 대한 평가 절하'는 이런 모순에서 시작된다.

최저임금법 제7조를 보면 '정신장애나 신체장애로 근로능력이 현저히 낮은 사람'은 최저임금 적용에서 제외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근로능력이 낮다는 판단은 누가 하는가. 사업주가 신청하면 고용노동부 장관이 인가한다. 이 제도 아래서 일하는 장애인은 2023년 기준 9,173명이다.

시간당 1,500원을 받는 장애인도 있다. 2,000원을 받으면 그나마 나은 편이다. 최저임금이 시간당 9,860원인데 말이다. 이들이 하는 일이 정말로 6분의 1 가치밖에 없을까. 아니면 우리가 이들의 노동을 6분의 1로만 보고 있는 걸까.

수전 웬델의 『거부당한 몸』(2013)은 장애를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구성물로 본다. 저자는 만성질환을 앓으며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쳤다. 그는 묻는다. 왜 어떤 몸은 정상이고 어떤 몸은 비정상인가. 누가 그 기준을 정하는가.

효율성이란 말이 나올 때마다 배제되는 사람들이 있다. 빠르게 일하지 못한다고, 실수가 잦다고, 의사소통이 어렵다고. 그런데 이 기준들은 정말 절대적인가. 8시간 근무제도 절대적이지 않았다. 주5일제도 그랬다. 바뀔 수 있는 것들을 바뀔 수 없다고 믿을 때 차별이 고착된다.

웬델은 '정상적인 몸'이라는 환상이 얼마나 허구적인지 보여준다. 누구나 일시적 혹은 영구적 장애를 경험한다. 다치거나 늙거나 병들거나. 그런데도 우리는 마치 영원히 건강할 것처럼 세상을 설계한다. 장애인을 위한 배려가 아니라 모두를 위한 설계가 필요한 이유다.

최저임금 적용 제외 조항은 1986년 최저임금법 제정 때부터 있었다. 40년 가까이 바뀌지 않았다. 그사이 장애인권리협약도 비준했고, 차별금지를 외치는 목소리도 커졌다. 하지만 이 조항만큼은 견고하게 남아있다.

혹시 이 제도가 장애인을 위한 거라고 생각하는가. 일자리라도 있어야 하지 않냐고. 그런데 정말 그럴까. 아니면 우리가 그렇게 믿고 싶은 걸까. 싼값에 노동력을 쓸 수 있는 제도를 선의로 포장하고 있는 건 아닐까.

장애인 고용률은 계속 오르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임금 격차는 여전하다. 일할 기회는 늘었지만 제대로 된 대우를 받을 기회는 늘지 않았다. 이게 과연 진전일까. 아니면 차별의 정교화일까.

웬델의 말처럼 '거부당한 몸'은 사회가 만든다. 최저임금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규정하는 순간, 그 사람의 노동은 온전한 노동이 아니게 된다. 같은 일터에서 일하면서도 다른 기준을 적용받는다. 이것이 포용인가, 배제인가.

최저임금법 제7조에 따라 장애인 9,173명이 시간당 1,500~2,000원의 저임금으로 일하고 있으며, 이는 현행 최저임금 9,860원의 6분의 1 수준이다. 기사는 장애를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구성물로 보면서, 40년 동안 유지돼온 이 제도가 진정한 포용이 아닌 차별의 정교화라고 지적한다.

장애인은 일할 수 있다. 그런데 최저임금을 받을 자격은 없다고 한다. 이 문장의 앞뒤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한국일보 한준규 부장이 지적한 '장애인 노동에 대한 평가 절하'는 이런 모순에서 시작된다.

최저임금법 제7조를 보면 '정신장애나 신체장애로 근로능력이 현저히 낮은 사람'은 최저임금 적용에서 제외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근로능력이 낮다는 판단은 누가 하는가. 사업주가 신청하면 고용노동부 장관이 인가한다. 이 제도 아래서 일하는 장애인은 2023년 기준 9,173명이다.

시간당 1,500원을 받는 장애인도 있다. 2,000원을 받으면 그나마 나은 편이다. 최저임금이 시간당 9,860원인데 말이다. 이들이 하는 일이 정말로 6분의 1 가치밖에 없을까. 아니면 우리가 이들의 노동을 6분의 1로만 보고 있는 걸까.

수전 웬델의 『거부당한 몸』(2013)은 장애를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구성물로 본다. 저자는 만성질환을 앓으며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쳤다. 그는 묻는다. 왜 어떤 몸은 정상이고 어떤 몸은 비정상인가. 누가 그 기준을 정하는가.

효율성이란 말이 나올 때마다 배제되는 사람들이 있다. 빠르게 일하지 못한다고, 실수가 잦다고, 의사소통이 어렵다고. 그런데 이 기준들은 정말 절대적인가. 8시간 근무제도 절대적이지 않았다. 주5일제도 그랬다. 바뀔 수 있는 것들을 바뀔 수 없다고 믿을 때 차별이 고착된다.

웬델은 '정상적인 몸'이라는 환상이 얼마나 허구적인지 보여준다. 누구나 일시적 혹은 영구적 장애를 경험한다. 다치거나 늙거나 병들거나. 그런데도 우리는 마치 영원히 건강할 것처럼 세상을 설계한다. 장애인을 위한 배려가 아니라 모두를 위한 설계가 필요한 이유다.

최저임금 적용 제외 조항은 1986년 최저임금법 제정 때부터 있었다. 40년 가까이 바뀌지 않았다. 그사이 장애인권리협약도 비준했고, 차별금지를 외치는 목소리도 커졌다. 하지만 이 조항만큼은 견고하게 남아있다.

혹시 이 제도가 장애인을 위한 거라고 생각하는가. 일자리라도 있어야 하지 않냐고. 그런데 정말 그럴까. 아니면 우리가 그렇게 믿고 싶은 걸까. 싼값에 노동력을 쓸 수 있는 제도를 선의로 포장하고 있는 건 아닐까.

장애인 고용률은 계속 오르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임금 격차는 여전하다. 일할 기회는 늘었지만 제대로 된 대우를 받을 기회는 늘지 않았다. 이게 과연 진전일까. 아니면 차별의 정교화일까.

『거부당한 몸』이 드러내는 장애인 노동의 현실은 가혹하다. 고용 의무를 부과하는 법이 있지만 기업들은 부담금을 내고 장애인을 채용하지 않는 쪽을 선택한다. 의무고용 제도가 오히려 장애인 배제의 면죄부로 기능하는 역설이 벌어지고 있다.

장애인 고용률 통계는 양적 지표만을 보여준다. 그 안에서 어떤 일을 하고, 얼마를 받고, 어떤 처우를 받는지는 드러나지 않는다. 단순 반복 업무에 배치되는 비율이 높고, 승진이나 경력 개발의 기회는 극히 제한적이다.

한국의 장애인 의무고용률은 민간기업 기준 3.1%다. 하지만 실제 고용률은 이에 미치지 못한다. 대기업일수록 부담금 납부로 의무를 대체하는 경향이 강하다. 채용보다 벌금이 싸다는 계산이 장애인을 노동시장에서 배제하는 논리로 작동한다.

웬델의 말처럼 '거부당한 몸'은 사회가 만든다. 최저임금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규정하는 순간, 그 사람의 노동은 온전한 노동이 아니게 된다. 같은 일터에서 일하면서도 다른 기준을 적용받는다. 이것이 포용인가, 배제인가.

📊숫자로 보는 이 기사
0
장애인 최저임금 적용제외 인가 현황 최근값
수치 일치 공신력 외부 출처 미확인
0
2019-2023 증감
수치 일치 공신력 외부 출처 미확인
0
2019 기준
수치 일치 공신력 외부 출처 미확인
이 기사를 주목해야하는 이유
1
장애인 노동 제도 평가

이 기사는 장애인의 최저임금 적용 제외 제도가 차별이라고 지적하며, 이 문제의 심각성과 개선 필요성을 제기한다.

2
장애인 노동 통계 분석

이 기사는 최저임금 적용 제외 장애인 수, 시간당 임금 수준 등 관련 통계를 제시해 문제의 실태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3
장애인 노동 제도 개선 요구

이 기사는 장애인 노동의 사회적 인식 제고와 차별 해소를 위한 제도적 개선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장애인 최저임금 적용제외 인가 현황
출처: 고용노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