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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세상을 보다 5월 3째주] 법의 언어, 삶의 온도

STO 법안 통과와 『법의 제국』이 묻는 정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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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제국
법의 제국
로널드 드워킨
법의 제국로널드 드워킨 · 1986

2025년 5월 초, 국회는 증권형 토큰 발행(STO) 법안을 통과시켰다. 디지털 자산의 새로운 장이 열렸다는 평가 속에 금융당국은 후속 제도 마련에 분주하다.

법안이 통과되면 세상이 바뀔까. 자본시장법 개정안 몇백 페이지가 한국의 2030세대 투자자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법조문의 건조한 문장들이 월급날 통장 잔고를 확인하는 직장인의 한숨과 어떻게 만날까.

로널드 드워킨은 『법의 제국』에서 법을 단순한 규칙의 집합이 아니라 '해석적 실천'으로 본다. 판사가 판결문을 쓰듯 우리도 매일 법을 해석하며 산다. 회사 취업규칙을 읽을 때, 전세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때, 주식 매매 버튼을 누를 때.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24년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일평균 거래대금은 3조원을 넘었다. 2021년 15조원에서 급감했다가 다시 회복 중이다. 숫자의 등락 뒤에는 수백만 명의 기대와 좌절이 있다.

드워킨이 말하는 '법의 통합성'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법이 일관된 원칙에 따라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이상이다. 그런데 현실의 법은 늘 누군가에게 더 가깝다. STO 법안도 마찬가지다. 기관투자자와 개인투자자 사이, 규제당국과 핀테크 스타트업 사이.

법안 통과 후 시장은 들썩였다. 하지만 2030 직장인들의 표정은 복잡하다. 주식도 어려운데 토큰까지. 부동산도 못 잡았는데 디지털 자산이라니. 법은 기회를 준다지만 그 기회가 내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법의 제국』은 법이 단순히 권력자의 명령이 아니라 공동체의 약속이어야 한다고 쓴다. 하지만 약속은 언제나 추상적이고, 삶은 언제나 구체적이다. STO가 허용하는 '조각 투자'가 청년들에게 희망일지 또 다른 계층 사다리일지는 아직 모른다.

진짜 문제는 법안 통과가 아니라 그 이후다. 드워킨의 표현을 빌리면, 법은 '연쇄 소설'처럼 계속 써나가야 한다. 국회의원이 쓴 1장 다음은 금융당국이, 그 다음은 거래소가, 궁극적으로는 투자자인 우리가 써야 한다.

법이 차가운 이유는 모두를 똑같이 대하려 하기 때문이다. 삶이 뜨거운 이유는 각자가 다른 온도로 살기 때문이다. 그 간극을 메우는 것은 제도가 아니라 우리의 해석이다.

법의 언어는 정확하지만 삶의 온도는 측정할 수 없다.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일평균 거래대금
출처: 금융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