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4월, 재정적자가 31.2조원을 기록했다. 법인세 수입은 35.8조원. 작년 코스피 상장사들이 거둔 영업이익은 196조8161억원이었다. 숫자들이 말해주는 것은 명확하다. 기업들은 역대급 실적을 올리고 있지만, 국가 재정은 갈수록 비어가고 있다는 사실.
어떤 이들은 추경 탓이라고 한다. 정부가 돈을 너무 많이 쓴다고. 그런데 정작 세수가 줄어든 가장 큰 원인, 감세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마치 그것은 당연한 일인 양. 세금을 덜 내면서도 복지는 더 받고 싶어 하는 모순. 우리는 언제부터 이런 환상에 빠졌을까.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은 2013년에 나왔다. 벌써 10년도 더 된 책이다. 그는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높을 때 불평등이 심화된다고 했다. r>g라는 간단한 부등식. 누군가는 이를 두고 너무 단순하다고 비판했지만, 현실은 그의 예측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피케티가 제시한 해법은 누진적 자본세였다. 부의 집중을 막고 재분배를 강화하자는 것. 그런데 우리는 정반대로 갔다. 법인세를 낮추고, 종합부동산세를 완화하고, 금융소득 과세 기준을 높였다. 부자들의 세금을 깎아주면 그들이 투자를 늘려 경제가 성장할 거라는 낡은 믿음. 낙수효과라는 이름의 신화.
양극화 지표들은 계속 악화되고 있다.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절반 가까이를 가져간다. 자산은 더 심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감세가 답이라고 믿는다. 아니, 믿고 싶어 한다. 혹시 나도 언젠가는 그 혜택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 복권을 사듯이.
피케티는 묻는다. 민주주의는 자본주의를 통제할 수 있는가. 시장의 힘이 정치를 압도할 때, 우리에게 남은 선택지는 무엇인가. 그는 역사를 돌아보라고 한다. 20세기 중반, 전쟁과 대공황을 거치며 불평등이 줄어들었던 시기. 그때는 국가가 강력한 재분배 정책을 펼쳤다. 높은 누진세율, 보편적 복지, 공공투자. 그것이 황금기를 만들었다.
지금 우리는 다시 갈림길에 서 있다.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복지를 줄일 것인가, 세금을 늘릴 것인가. 아니면 그냥 빚을 늘려가며 미래 세대에게 떠넘길 것인가.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감세와 복지를 동시에 늘리는 마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피케티의 책이 나온 지 10년. 우리는 그동안 무엇을 배웠나. 불평등이 경제성장을 가로막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계속 같은 길을 가는가. 혹시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만 그 답이 불편해서,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민주주의의 미래는 우리가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하느냐에 달려있다. 피케티가 경고했듯이, 극심한 불평등은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한다. 부자들이 정치를 좌우하고, 가난한 이들은 투표조차 포기한다. 그런 사회를 우리는 원하는가. 아니면 다른 길을 찾을 것인가.
시간은 많지 않다. 재정적자는 계속 늘어나고, 양극화는 심화되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다. 불편한 진실을 마주할 용기. 기득권에 맞설 용기. 그리고 변화를 선택할 용기. 피케티의 책은 10년 전에 쓰여졌지만, 그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어떤 사회에서 살고 싶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