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건설사 임원이 회의실 창문 너머로 아파트 건설 현장을 바라본다. 크레인은 멈춰 있고, 콘크리트 타설 일정표에는 물음표가 그려져 있다. 그는 책상 위에 펼쳐진 사업계획서를 천천히 닫는다. 숫자들이 말해주지 않는 것들이 있다. 정책의 방향이 불분명할 때, 기업은 어떻게 미래를 그려야 하는가. 그의 머릿속에는 이미 수십 가지 시나리오가 그려지고 지워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 정책 기조는 명확해 보인다. 주택 공급 확대와 세금 규제 완화. 하지만 건설업계는 '정중동'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움직이지 않는 듯 보이지만 내부에서는 치열한 계산이 이루어진다. 요충지 수주 경쟁만이 뜨거울 뿐, 대규모 개발 계획은 유보된다. 왜일까.
정책의 세부 내용이 불분명할 때, 기업은 리스크를 최소화하려 한다. 이는 단순한 경영 판단의 문제가 아니다. 불확실성 속에서 인간이 취하는 태도의 문제다. 우리는 종종 정책을 거대한 방향성으로만 이해한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그 방향성보다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더 중요하다. 건설사들이 주목하는 것은 대통령의 연설문이 아니라 시행령의 한 줄, 세칙의 한 단어다.
대런 애쓰모글루와 제임스 로빈슨의 『좁은 회랑』은 이런 상황을 다른 언어로 설명한다. 저자들은 자유가 국가와 사회의 균형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고 말한다. 너무 강한 국가도, 너무 약한 국가도 문제다. 그 사이의 좁은 회랑에서만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하다. 부동산 시장도 마찬가지 아닐까. 정부의 개입이 너무 강해도, 너무 약해도 시장은 왜곡된다.
그러나 『좁은 회랑』이 더 깊이 파고드는 것은 그 균형점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균형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국가와 사회가 끊임없이 경합하고 조정하는 과정에서 형성된다. 지금 건설사들의 '정중동'은 바로 이 과정의 한 단면이다. 그들은 정부 정책이 어느 방향으로 구체화될지 지켜보며, 동시에 자신들의 행동으로 그 정책의 방향에 영향을 미치려 한다.
한국의 주택 착공 건수는 2022년 약 42만 호에서 2023년 약 38만 호로 감소했다. 2024년에는 더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 숫자의 하락은 단순히 경기 침체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정책의 불확실성이 만들어낸 관망세가 더 큰 요인이다. 건설사들은 움직이지 않음으로써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
애쓰모글루와 로빈슨은 제도가 인간의 행동을 규정한다고 본다. 하지만 동시에 인간의 행동이 제도를 만들어간다고도 말한다. 이 순환의 고리에서 '기다림'도 하나의 행동이다. 건설사들의 침묵은 정책 입안자들에게 보내는 신호다. 우리에게는 더 명확한 규칙이 필요하다는.
창문 너머의 건설 현장은 여전히 조용하다. 그 임원은 다시 사업계획서를 펼친다. 숫자들 사이에서 그는 좁은 회랑을 찾고 있다. 정부의 규제와 시장의 자유 사이, 안정과 성장 사이, 현재와 미래 사이. 그 좁은 공간에서만 가능한 선택들을 저울질한다.
불확실성의 시대, 우리는 모두 그와 같은 처지에 있는지도 모른다. 명확한 방향을 기다리며 동시에 그 방향을 만들어가는 존재들. 정중동은 비단 건설사만의 전략이 아니다. 불분명한 미래 앞에서 개인이 택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소극성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