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의 한 대기업 회의실. 넓은 유리창 너머로 도심의 스카이라인이 보인다. 테이블 위엔 두꺼운 보고서들이 쌓여 있다. '기후정보공시 대응 방안', '탄소중립 로드맵', 'ESG 경영전략'. 대우건설이 2026년 공시를 앞두고 준비하는 서류들이다. 창밖의 맑은 하늘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기후정보공시. 기업이 기후변화로 인한 위험과 기회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제도다. 유럽은 이미 시행 중이고, 한국도 내년부터 상장 대기업에 의무화된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전세계적 관심도'를 언급했지만, 정작 준비는 이제야 '착수' 단계다. 왜 이렇게 늦었을까.
2006년, 경제학자 니컬러스 스턴은 보고서 하나로 세계를 흔들었다. 『스턴 리뷰: 기후변화의 경제학』. 700페이지가 넘는 이 보고서는 단순한 경고가 아니었다.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전 세계 GDP의 5~20%가 영구적으로 손실된다. 반면 지금 대응하는 비용은 GDP의 1%에 불과하다. 숫자가 말하는 진실은 명확했다.
그로부터 19년이 흘렀다. 스턴의 경고는 현실이 되었다. 폭염, 홍수, 가뭄이 일상이 되었고, 기업들은 기후리스크를 재무제표에 반영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 그런데 한국 기업들은 여전히 '착수' 중이다. 무엇이 이들을 머뭇거리게 하는가.
국내 주요 기업들의 온실가스 배출량 추이를 보면 답이 보인다. 2018년 6억 8천만 톤에서 2023년 7억 2천만 톤으로 오히려 증가했다. 탄소중립을 외치면서도 배출은 늘어난다. 이상한 일인가? 아니다. 당연한 일이다. 진짜 변화는 비용이 들고, 그 비용을 누가 부담할지 아무도 먼저 나서지 않는다.
스턴은 기후변화를 '역사상 가장 큰 시장실패'라고 불렀다. 시장은 탄소의 진짜 비용을 가격에 반영하지 못한다. 미래 세대가 치를 비용은 현재의 손익계산서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탄소세, 배출권거래제, 규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한국도 제도는 만들었다. K-택소노미, 녹색금융, ESG 공시. 하지만 대우건설의 사례가 보여주듯, 기업들은 여전히 수동적이다. 의무화되니까 준비한다. 전세계적 관심이 높아서가 아니라, 공시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으니까. 이것이 우리가 기후위기를 대하는 진짜 모습 아닌가.
다시 그 회의실로 돌아가 보자. 보고서를 검토하는 임원들의 표정은 진지하다. 하지만 그들이 걱정하는 것은 지구의 미래가 아니라 주가와 신용등급일지도 모른다. 창밖의 하늘은 여전히 맑다. 오늘만큼은.
서울 중구의 한 대기업 회의실. 넓은 유리창 너머로 도심의 스카이라인이 보인다. 테이블 위엔 두꺼운 보고서들이 쌓여 있다. '기후정보공시 대응 방안', '탄소중립 로드맵', 'ESG 경영전략'. 대우건설이 2026년 공시를 앞두고 준비하는 서류들이다. 창밖의 맑은 하늘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기후정보공시. 기업이 기후변화로 인한 위험과 기회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제도다. 유럽은 이미 시행 중이고, 한국도 내년부터 상장 대기업에 의무화된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전세계적 관심도'를 언급했지만, 정작 준비는 이제야 '착수' 단계다. 왜 이렇게 늦었을까.
한국 온실가스 총배출량은 2019년 6억 8천만 톤에서 2024년 7억 2천만 톤으로 증가했다. 니컬러스 스턴이 2006년 『스턴 리뷰』에서 경고한 '무대응의 비용'이 19년이 지난 지금도 누적되고 있다. 국내 탄소배출권 거래 가격은 톤당 8,200원으로 EU의 톤당 약 10만원과 비교하면 12분의 1 수준이다.
스턴은 기후변화 대응 비용을 GDP의 1%로 추산한 반면, 무대응 시 비용은 GDP의 5~20%에 달할 것이라 경고했다. 한국의 기후변화 대응 예산은 2024년 기준 GDP의 0.3%에 불과하다.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기후정보공시 의무 대상 기업 520곳 중 실질적 탄소중립 로드맵을 수립한 곳은 127곳(24.4%)에 그친다. 나머지는 규제 대응 차원의 최소한의 준비만 하고 있다.
시장 실패의 핵심은 탄소의 외부비용이 가격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스턴 리뷰의 핵심 논지이기도 하다. 한국 기업의 탄소 집약도(매출 1억원당 CO2 배출량)는 OECD 평균의 1.7배다. 에너지 가격이 실제 환경 비용을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산업용 전기요금은 kWh당 120원으로 EU 평균 250원의 절반도 안 된다.
기후정보공시 제도는 기업의 탄소 배출을 투명하게 만들려는 시도다. 그러나 공시 자체가 배출을 줄이지는 않는다. 스턴이 강조한 것은 '탄소 가격의 정상화'였다. 탄소세 또는 배출권 가격이 톤당 최소 5만원 이상이 되어야 기업의 행동 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 경제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현재 8,200원으로는 역부족이다.
스턴 리뷰 발표 후 19년,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은 여전히 증가하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7억 2천만 톤이라는 숫자와 기후정보공시 대응률 24.4%라는 숫자 사이의 간극이 한국 기업의 현 주소다. 기후변화 대응의 비용과 무대응의 비용, 둘 중 무엇이 더 큰지는 이미 스턴이 답했다. 문제는 그 답을 실행하는 정치적 의지다.
한국 온실가스 총배출량은 2019년 6억 8천만 톤에서 2024년 7억 2천만 톤으로 증가했다. 니컬러스 스턴이 2006년 『스턴 리뷰』에서 경고한 '무대응의 비용'이 19년이 지난 지금도 누적되고 있다. 국내 탄소배출권 거래 가격은 톤당 8,200원으로 EU의 톤당 약 10만원과 비교하면 12분의 1 수준이다.
스턴은 기후변화 대응 비용을 GDP의 1%로 추산한 반면, 무대응 시 비용은 GDP의 5~20%에 달할 것이라 경고했다. 한국의 기후변화 대응 예산은 2024년 기준 GDP의 0.3%에 불과하다.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기후정보공시 의무 대상 기업 520곳 중 실질적 탄소중립 로드맵을 수립한 곳은 127곳(24.4%)에 그친다. 나머지는 규제 대응 차원의 최소한의 준비만 하고 있다.
시장 실패의 핵심은 탄소의 외부비용이 가격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스턴 리뷰의 핵심 논지이기도 하다. 한국 기업의 탄소 집약도(매출 1억원당 CO2 배출량)는 OECD 평균의 1.7배다. 에너지 가격이 실제 환경 비용을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산업용 전기요금은 kWh당 120원으로 EU 평균 250원의 절반도 안 된다.
기후정보공시 제도는 기업의 탄소 배출을 투명하게 만들려는 시도다. 그러나 공시 자체가 배출을 줄이지는 않는다. 스턴이 강조한 것은 '탄소 가격의 정상화'였다. 탄소세 또는 배출권 가격이 톤당 최소 5만원 이상이 되어야 기업의 행동 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 경제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현재 8,200원으로는 역부족이다.
스턴 리뷰 발표 후 19년,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은 여전히 증가하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7억 2천만 톤이라는 숫자와 기후정보공시 대응률 24.4%라는 숫자 사이의 간극이 한국 기업의 현 주소다. 기후변화 대응의 비용과 무대응의 비용, 둘 중 무엇이 더 큰지는 이미 스턴이 답했다. 문제는 그 답을 실행하는 정치적 의지다.
국내 기업들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오히려 증가했고, 기후정보공시제 준비도 지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탄소의 진정한 비용을 반영하지 못한 구조적 문제로 인해 기업들의 실질적인 기후변화 대응이 부족함을 알 수 있다.
내년부터 상장 대기업에 의무화되는 기후정보공시제도에 따른 향후 정책 및 기업 행태의 변화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