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매일 지나는 그 역 앞 건물이 청년주택이라는 걸 알고 있었는가. 광운대역 청년주택 프로젝트가 400억원 채무인수로 마무리됐다는 소식이 8월 18일 전해졌다. 현대아산이 시공을 맡은 이 건물은 이제 누군가의 보금자리가 될 것이다.
청년주택이라는 이름은 언제부터 우리 곁에 있었을까. 불과 10년 전만 해도 이런 명칭은 존재하지 않았다. 원룸, 고시원, 반지하가 청년들의 주거를 대변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정부와 지자체는 청년주택이라는 카테고리를 만들어냈고, 역세권마다 이런 건물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400억원이라는 숫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가. 이것은 단순히 건축비나 토지비의 합이 아니다. 누군가의 주거권을 둘러싼 복잡한 이해관계의 총합이다. 시공사, 금융기관, 공공기관, 그리고 입주할 청년들. 각자의 계산법은 다르지만 모두가 이 숫자 안에서 움직인다.
김현미가 쓴 『젠더와 사회』(2014)는 주거를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닌 사회적 관계의 장으로 본다. 청년주택이라는 명명 자체가 이미 특정한 삶의 방식을 전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독립적이되 임시적인, 개인적이되 관리되는 삶. 저자는 이를 통해 우리 사회가 청년을 어떻게 상상하고 있는지 묻는다.
실제로 청년주택의 평균 거주 기간은 2.3년에 불과하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안정적인 주거가 아니라 통과의례라는 뜻이다. 청년들은 여기서 잠시 머물다가 다시 떠난다. 더 나은 곳으로? 아니면 또 다른 임시 거처로?
채무인수라는 금융 용어가 낯선 당신에게 설명하자면, 이것은 누군가의 빚을 다른 누군가가 떠안는다는 뜻이다. 현대아산이 떠안은 400억원의 빚은 결국 임대료로 회수될 것이다. 그 임대료는 누가 내는가. 바로 청년들이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청년층의 월평균 주거비 지출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18년 45만원에서 2023년 68만원으로 51%나 올랐다. 같은 기간 청년층 평균 소득 증가율은 23%에 그쳤다. 이 격차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광운대역 청년주택에는 400가구가 입주할 예정이다. 400개의 방, 400명의 청년, 400개의 꿈. 하지만 이들이 이곳에 머무는 동안 진짜 집을 가질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청년주택이 징검다리인지 함정인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김현미는 책에서 이렇게 썼다. 주거 불안정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청년주택이라는 해법이 과연 이 구조를 바꾸고 있는가, 아니면 단지 유지하고 있는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청년주택을 바라보는 시선은 표면적 현상 너머의 구조를 향한다. 마이클 샌델은 개별 사건의 원인을 개인에게 돌리는 대신, 그 사건을 가능하게 만든 사회적 조건을 추적한다. 이런 관점은 반복되는 문제의 근본 원인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청년주택 문제의 핵심은 제도와 현실 사이의 괴리에 있다. 법과 정책은 존재하지만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거나, 작동하더라도 의도와 다른 결과를 낳는 경우가 빈번하다. 마이클 샌델이 주목하는 것도 바로 이 간극이다. 설계된 세계와 살아가는 세계 사이의 거리.
한국 사회에서 청년주택은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경제 구조, 인구 변화, 기술 발전, 세대 갈등 등 복합적인 요인과 얽혀 있다. 한 가지 변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복잡성이 정책 입안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든다.
당신이 내일 아침 광운대역을 지날 때, 그 청년주택 건물을 한 번 올려다보길 바란다. 400억원의 무게가, 400명의 청년이, 그리고 우리 사회의 주거 정책이 그 안에 담겨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마이클 샌델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시장의 언어가 모든 영역을 침범하는 현상을 추적한다. 그는 묻는다. 주거가 상품이 되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집이 투자 대상이 되면 누가 배제되는가.
청년주택이라는 이름표를 단 건물들이 늘어난다. 정부는 공급 실적을 발표하고 언론은 숫자를 보도한다. 그런데 정작 청년들은 어디에 있는가. 월세를 내며 방 한 칸에 머물거나, 부모의 집에서 독립을 미루고 있다.
공공주택이라던 청년주택 사업에서 건설사가 400억원 손실을 떠안게 된 사건은 정부 정책의 실행 불가능성을 명백히 보여준다. 청년을 위한다는 취지와 수익성 추구라는 현실의 간극이 얼마나 심각한지 드러낸 계기다.
공급 숫자는 증가하지만 실제 청년들은 여전히 월세 방에 머물거나 부모 집에서 독립을 미루고 있다. 정책 실적과 현장 현실 사이의 괴리가 청년 주거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가로막고 있다.
주거를 투자 상품으로 취급하는 시장 논리는 결국 누가 배제되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을 던진다. 청년들에게 집은 생존의 문제인데, 정책은 여전히 공급량과 수익률의 언어로만 말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