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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세상을 보다 9월 1째주] 사라지는 마을

충남 유구읍의 LPG 배관망과 마지막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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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없는 곳의 꽃
아무도 없는 곳의 꽃
윤대녕
아무도 없는 곳의 꽃윤대녕 · 2015

『아무도 없는 곳의 꽃』에서 윤대녕은 폐교 직전의 시골 학교를 그려낸다. 전교생 열두 명. 매년 두세 명씩 줄어들다가 이제 곧 문을 닫을 학교. 소설 속 교사는 텅 빈 운동장을 바라보며 묻는다. 마을이 사라진다는 것은 무엇인가. 단지 사람이 떠나는 일인가, 아니면 무언가 더 근본적인 것이 끝나는 일인가.

충남 공주시 유구읍에서 119억원짜리 LPG 배관망 공사가 한창이다. 2023년 시작해 2025년 완공 예정. 1288가구가 혜택을 받는다고 한다. 그런데 작년 이 읍의 출생아는 단 3명이었다. 119억원을 들여 깔아놓은 배관을 누가 쓸 것인가. 10년 후, 20년 후 이 마을에는 누가 남아있을까.

사회기반시설이란 미래를 전제로 한다. 도로를 닦고 상하수도를 매설하는 일은 그곳에 계속 사람이 살 것이라는 믿음의 표현이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의 많은 지방도시들은 그 전제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인구는 줄고, 젊은이는 떠나고, 학교는 문을 닫는다. 그럼에도 관성처럼 진행되는 개발사업들. 이것은 미래를 위한 투자인가, 과거에 대한 미련인가.

윤대녕의 소설에서 마을 사람들은 끝까지 학교를 지키려 한다. 도시에서 아이들을 데려와 전학시키는 방법까지 궁리한다. 하지만 결국 실패한다. 소설은 담담하게 그 실패를 기록한다. 원망도, 분노도 없이. 마치 계절이 바뀌듯 자연스러운 일인 양.

행정은 숫자로 세상을 본다. 1288가구라는 수치는 명확하다. 하지만 그 숫자가 품고 있는 시간의 무게는 보이지 않는다. 평생 이곳에서 살아온 노인들, 떠나지 못해 남은 중년들, 떠날 날만 기다리는 젊은이들. 각자가 품고 있는 이 마을에 대한 기억과 상처와 애증. 119억원이라는 예산은 그런 것들을 담아낼 수 있을까.

한국의 지방소멸지수는 매년 갱신된다. 2018년 89개였던 소멸위험지역은 2024년 118개로 늘었다. 전체 시군구의 절반이 넘는다. 이제 지방소멸은 먼 미래의 우려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현실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개발의 언어로만 이 문제를 바라본다. 더 많은 예산, 더 큰 사업, 더 화려한 시설. 하지만 정작 필요한 것은 다른 질문일지도 모른다.

사라지는 것들을 어떻게 품위 있게 보낼 것인가. 끝나가는 것들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 소설 속 교사는 폐교식 날, 아이들과 함께 학교 곳곳을 사진으로 남긴다. 교실, 복도, 운동장, 철봉. 곧 사라질 풍경들을 하나하나 기록한다.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애도의 방식이었다.

유구읍의 LPG 배관망은 예정대로라면 올해 안에 완공된다. 깨끗한 에너지가 각 가정에 공급될 것이다. 삶의 질은 분명 나아질 것이다. 하지만 그 배관을 타고 흐르는 것이 단지 가스만은 아닐 것이다. 거기에는 이 마을의 마지막 세대가 품고 있는 복잡한 감정들도 함께 흐를 것이다. 떠나지 못한 죄책감, 남아있는 자부심, 그리고 언젠가 이 모든 것이 끝날 거라는 예감.

지금 한국의 많은 마을들이 유구읍과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인프라는 확충되지만 사람은 줄어든다. 시설은 현대화되지만 공동체는 해체된다. 이것은 발전인가 쇠퇴인가. 아니면 그런 이분법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훨씬 더 복잡하고 아픈 무언가인가. 윤대녕의 소설은 답을 주지 않는다. 다만 사라지는 것들 앞에서 잠시 멈춰 서서, 그것들을 조용히 바라볼 뿐이다.

전국 소멸위험지역 추이
출처: 한국고용정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