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은 오늘 얼마나 걸었는가. 집에서 지하철역까지, 버스정류장에서 회사 입구까지, 점심시간 식당으로 가는 그 짧은 거리들을 떠올려본다면 어떤가. 행정안전부가 보행자 안전문화 확산을 위한 정책을 다시 강조하고 나선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도시는 점점 빨라지고 있지만 우리의 두 발은 여전히 같은 속도로 움직인다.
제인 제이콥스가 1961년 뉴욕의 거리를 걸으며 도시계획의 오만함을 지적했을 때, 그녀가 본 것은 단순한 보도블록이 아니었다. 보행자의 눈높이에서 바라본 도시는 계획도면과는 전혀 다른 생명체였다. 위에서 내려다본 직선과 아래에서 올려다본 굴곡 사이의 간극. 그 틈새로 삶이 흘러간다.
한국의 보행자 사망률은 OECD 평균의 두 배에 달한다. 이 숫자 뒤에는 무엇이 있을까. 빨리빨리의 문화? 자동차 중심의 도시설계? 아니면 걷는 것이 가진 의미를 잊어버린 우리 자신?
제이콥스는 걷기를 '도시의 발레'라고 불렀다. 아침 출근길 인도의 리듬, 점심시간 횡단보도의 군무, 퇴근길 골목의 즉흥곡. 각자의 발걸음이 만들어내는 도시의 안무는 누가 짜는가. 신호등이 지휘하고 차선이 무대를 나누지만, 실제 춤을 추는 것은 보행자들이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도시는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인데, 정작 사람이 걷기에는 불편하다. 횡단보도 신호는 늘 짧고, 인도는 좁으며, 곳곳에 장애물이 놓여있다. 마치 도시가 우리에게 묻는 것 같다. 정말로 걸어야만 하는가?
1960년대 미국 도시들이 고속도로에 매몰되어갈 때, 제이콥스는 단호했다. 도시의 활력은 보행자로부터 나온다고. 걷는 사람이 사라진 거리는 죽은 거리라고. 그로부터 6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무엇을 배웠는가.
보행자 안전을 위한 정책이 필요한 것은 맞다. 하지만 안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이동하는 것이 아니다. 주변을 보고, 사람을 만나고, 도시를 경험하는 가장 인간적인 방식이다. 속도의 시대에 느림의 가치를 묻는 행위다.
도시계획가들은 여전히 효율을 말한다. 교통공학자들은 여전히 흐름을 계산한다. 그 사이에서 보행자는 변수가 아닌 상수로 취급된다. 하지만 제이콥스가 남긴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누구를 위한 도시인가?
당신이 내일 아침 집을 나서서 처음 만나는 횡단보도 앞에 설 때, 잠시 생각해보면 어떨까. 이 도시는 나를 환영하는가. 아니면 참아주고 있을 뿐인가.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는 그 짧은 시간이, 어쩌면 도시와 인간의 관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결국 보행자 정책이 묻고 있는 것은 안전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다. 도시에서 걷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고 걷지 못하는 도시는 과연 사람이 사는 곳이라 할 수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