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릉 오봉저수지의 저수율이 11.5%까지 떨어진 날, 서울에서는 10월 중순임에도 낮 기온이 28도를 넘었다. 물은 말라가는데 땀은 멈추지 않았다.
2025년은 기록의 해였다. 역대 최악의 산불, 가뭄, 폭우, 폭염이 한 해에 모두 찾아왔다는 정부 보고서가 나왔다. 6월부터 시작된 이른 더위는 10월까지 이어졌고, 강원도 일부 지역에서는 제한 급수가 시행됐다. 농작물은 고사했다. 이상기후라는 단어가 더 이상 이상하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
도로시 데이는 1933년 대공황 시대의 뉴욕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긴 외로움』을 썼다. 빈민가에서 무료 급식소를 운영하며 목격한 것은 단순한 경제적 궁핍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서로로부터, 그리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단절되어가는 과정이었다. 가뭄이 닥친 중서부에서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떠나온 사람들의 눈에서 그는 무언가 근본적인 것의 상실을 읽었다.
기후위기라는 말이 일상어가 되어버린 지금, 우리가 잃어가는 것은 무엇일까. 단지 적정한 기온과 충분한 강수량만은 아닐 것이다. 데이가 90년 전 뉴욕의 빈민가에서 목격한 것처럼, 우리도 무언가로부터 단절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국의 1인당 연간 물 사용량은 2020년 289리터에서 2025년 312리터로 증가했다. 가뭄이 심해질수록 물 사용량은 오히려 늘어났다. 에어컨 사용 시간도 마찬가지다. 폭염이 길어질수록 실내외 온도차는 더 벌어졌다. 우리는 자연의 변화에 적응하는 대신, 그것을 차단하는 쪽을 선택했다.
데이는 가난을 단순한 물질적 결핍이 아닌 관계의 단절로 보았다. 땅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노동과의 관계가 끊어질 때 진정한 가난이 시작된다고 했다. 폭염 속에서 에어컨을 켜고, 가뭄 속에서 물을 더 쓰는 우리의 모습에서도 비슷한 단절이 보인다. 기후와의 관계를 기술로 차단하면서, 우리는 무엇인가를 잃어가고 있다.
국가기후위기대응위원회가 발표한 보고서는 앞으로 이런 현상이 더 심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동시다발적 재난이 일상이 되는 시대. 그런데 정작 우리의 대응은 어떤가. 더 강력한 에어컨, 더 많은 저수지, 더 정교한 예보 시스템. 모두 필요한 것들이다. 하지만 데이가 대공황의 빈민가에서 급식만이 아닌 공동체를 만들려 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다른 상상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저수율 11.5%의 오봉저수지 앞에 선 농민의 표정을 상상해본다. 그는 단지 물이 부족해서만 걱정하는 것일까. 아니면 조상 대대로 이어온 땅과의 관계가, 계절의 리듬이, 농사라는 삶의 방식 자체가 흔들리는 것을 느끼고 있는 것일까.
데이는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역설적으로 풍요를 발견했다. 나눔 속에서, 연대 속에서, 서로를 돌보는 일상 속에서 찾은 풍요였다. 기후위기 시대의 우리에게도 그런 역설이 가능할까. 폭염과 가뭄이 동시에 찾아온 2025년, 우리가 정말로 찾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