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창군 어느 읍내의 골목길. 담벼락에는 페인트가 벗겨진 자국이 번져 있고, 녹슨 대문 너머로는 무너진 기와 조각이 보인다. 바람이 불 때마다 헐거워진 창문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 집은 3년 전부터 비어있다. 주인은 도시로 떠났고, 명절에도 돌아오지 않는다.
전국의 빈집 관련 예산이 시도별로 최대 100배 차이가 난다는 보도가 나왔다. 2023년부터 2025년까지의 전수조사 결과다. 예산의 격차는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지역은 빈집 한 채당 수백만원을 투입하고, 어떤 지역은 수만원도 쓰지 못한다. 그 사이에서 빈집들은 계속 늘어난다.
리베카 솔닛은 『폐허의 지도』에서 디트로이트의 버려진 집들을 추적한다. 한때 자동차 산업의 심장부였던 도시가 어떻게 텅 비어가는지, 그 과정을 차분히 기록한다. 빈집이 늘어나는 속도는 처음엔 느리다. 한 집, 두 집. 그러다 어느 순간 임계점을 넘으면 걷잡을 수 없이 빨라진다.
솔닛이 주목한 것은 빈집 자체가 아니라 빈집이 만드는 연쇄작용이었다. 한 집이 비면 옆집 사람들이 불안해한다. 범죄율이 오르고 집값이 떨어진다. 그러면 또 누군가가 떠난다. 빈집은 빈집을 낳는다. 마치 전염병처럼.
고창군은 지방소멸대응기금 276억원을 확보했다고 한다. 2022년부터 2025년까지 나름의 성과를 냈다는 평가도 받는다. 하지만 현장의 풍경은 다르다. 빈집 정비 예산은 있지만 정작 집주인을 찾을 수 없다. 소유권이 복잡하게 얽혀 있거나, 상속인들이 서로 연락을 끊은 경우가 많다.
빈집은 단순히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이 아니다. 그것은 관계의 단절을 보여주는 증거다. 가족이 흩어지고, 이웃이 사라지고, 마을이 해체되는 과정의 물리적 흔적이다. 우리는 이것을 지방소멸이라고 부르지만, 실은 훨씬 복잡한 현상이다.
디트로이트의 빈집들 중 일부는 예술가들의 작업실이 되었다. 도시농업을 하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하지만 솔닛은 묻는다. 이것이 정말 재생인가, 아니면 또 다른 형태의 소멸인가? 원래 살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는가?
정부의 부동산 불법행위 단속이 강화된다는 소식도 들린다. 투기와 편법거래를 막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방의 빈집 문제는 투기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 문제다. 팔리지도, 임대되지도 않는 집들. 시장의 논리 밖에 있는 공간들.
빈집이 늘어나는 것은 인구가 줄어서만은 아니다. 새 집을 선호하는 문화, 노후주택을 고치는 것보다 이사를 택하는 경제논리, 가족 형태의 변화. 여러 요인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예산을 늘린다고, 정비사업을 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고창의 그 골목길로 다시 돌아가보자. 빈집 옆에는 여전히 사람이 사는 집들이 있다. 매일 아침 대문을 열고 나오는 노인들, 화분에 물을 주는 손길들. 이들에게 빈집은 매일 마주해야 하는 불안이다. 언제 자신의 집도 그렇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그 두려움이 또 다른 빈집을 만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