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6억원. 고창군이 4년간 확보한 지방소멸대응기금이다. 한 지자체가 소멸을 막기 위해 쏟아붓는 돈. 그런데 정작 빈집 정비 예산은 시도별로 100배 격차가 난다. 어떤 곳은 수십억원을, 어떤 곳은 수천만원을 쓴다.
빈집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다. 사람이 떠난 자리다. 가족이 흩어진 흔적이다. 마을이 조각나는 증거다. 악취가 나고 범죄 우려가 있다고 철거하면 끝일까. 부서진 콘크리트 더미 위에 새 건물을 올린다고 공동체가 되살아날까.
일본의 사회학자 마스다 히로야는 『지방소멸』에서 896개 지자체가 사라질 것이라 예측했다. 2014년의 일이다. 충격적 숫자였다. 일본 전역이 술렁였다. 한국도 비슷한 보고서들이 쏟아졌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다.
예측은 빗나갔을까. 아니다. 더 빨라졌다. 마스다는 인구 감소를 수치로만 봤다. 20~39세 여성 인구가 절반 이하로 줄면 소멸한다고 정의했다. 하지만 실제 지방의 죽음은 더 복잡했다. 학교가 문을 닫고, 병원이 철수하고, 버스가 끊기는 순간 가속도가 붙었다.
빈집 정비에 100배 격차가 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부자 지역은 미리 손을 쓴다. 가난한 지역은 이미 늦었다. 예산이 없어서가 아니다. 써도 소용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276억원을 쏟아부어도 막을 수 없는 흐름이라면?
마스다는 책에서 묻는다. 왜 도시로만 몰리는가. 답은 간단하다. 일자리가 거기 있으니까. 하지만 그는 다시 묻는다. 일자리만 있으면 되는가. 도시의 젊은이들은 왜 아이를 낳지 않는가. 지방이 사라지면 도시도 결국 늙는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15년 전체 주택의 6.5퍼센트였던 빈집 비율이 2020년 8.2퍼센트로 늘었다. 5년 만에 151만 채에서 166만 채가 됐다. 단순 계산하면 매년 3만 채씩 빈집이 생긴다. 하지만 수도권과 지방의 속도는 다르다. 어떤 마을은 절반이 빈집이다.
정부는 부동산 시장 안정화를 외친다. 투기와 불법을 단속한다. 1500명을 적발했다고 발표한다. 그런데 묘하다. 수도권에선 집값을 잡겠다고 난리고, 지방에선 집이 텅 비어간다. 같은 나라 같은 시대의 일인가.
마스다는 경고했다. 지방소멸은 조용히 진행된다고. 어느 날 갑자기 마을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 젊은이 한 명, 가게 하나씩 빠져나간다. 그러다 임계점을 넘으면 걷잡을 수 없다. 한국의 빈집 100배 격차가 그 임계점을 보여준다.
276억원과 수천만원. 숫자의 격차만큼 미래의 격차도 벌어진다. 어떤 지역은 살아남고 어떤 지역은 사라진다. 우리는 지금 그 갈림길에 서 있다. 빈집을 정비하는 게 아니라, 빈집이 될 운명을 정비해야 하는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