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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세상을 보다 11월 1째주] 돌봄의 무게

고령화된 마을에서 안전사고 위험을 점검하는 자원봉사자들의 발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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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살아가기
홀로 살아가기
우에노 치즈코
홀로 살아가기우에노 치즈코 · 2023

의성군 종합자원봉사센터의 김영숙 씨는 오늘도 낡은 주택의 문턱 높이를 자로 재고 있었다. 7센티미터. 젊은 사람에겐 아무것도 아닌 높이지만, 거동이 불편한 노인에겐 넘어짐의 시작점이다. 그녀는 수첩에 집 주소와 함께 '문턱 경사로 설치 필요'라고 적었다. 이미 오전에만 다섯 집을 돌았고, 매번 비슷한 내용을 적었다. 느슨해진 손잡이, 미끄러운 욕실 바닥, 어두운 계단. 반복되는 위험 요소들이 그녀에게는 더 이상 단순한 시설 문제로 보이지 않았다.

전국 229개 시군구 중 89곳이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된다. 의성군도 그중 하나다. 고령 인구 비율이 40퍼센트를 넘어서면서 '초고령사회'라는 딱지가 붙었다. 하지만 김영숙 씨가 매일 마주하는 건 통계가 아니라 사람이다. 혼자 사는 박 할머니의 부엌 찬장이 너무 높아 발받침을 딛고 올라가다 떨어진 적이 있다는 이야기, 화장실 전구를 갈지 못해 몇 달째 어둠 속에서 용변을 본다는 최 할아버지의 하소연. 그들에게 고령화란 추상적인 사회 문제가 아니라 매일의 불편함이고 위험이었다.

일본의 사회학자 우에노 치즈코는 『홀로 살아가기』에서 '재택 고독사'라는 표현을 쓴다. 시설이 아닌 자기 집에서, 홀로 맞는 죽음. 그것이 과연 쓸쓸하기만 한 일인가. 우에노는 묻는다. 오히려 끝까지 자기 공간을 지킨다는 것, 타인의 시선과 규율에서 벗어나 온전히 자신으로 존재한다는 것의 의미를 되짚는다. 하지만 그 '홀로 있음'이 선택이 되려면, 최소한의 안전이 보장되어야 한다. 넘어지지 않을 수 있는 환경, 아플 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연결망, 일상의 작은 불편을 해결할 수 있는 지원. 이것들이 있어야 비로소 '혼자 사는 삶'이 고립이 아닌 자립이 될 수 있다.

김영숙 씨가 방문한 집들 중 3분의 1은 독거노인 가구였다. 그들 대부분은 자녀가 있지만 도시에 살고 있었다. 명절에나 얼굴을 보는 사이. 전화로 안부를 묻지만 집 안의 위험요소까지 살필 수는 없다. 그 빈자리를 자원봉사자들이 메우고 있었다. 하지만 의성군 전체 고령 인구가 2만 명을 넘는데, 안전점검 봉사자는 50명 남짓. 한 명이 400명을 책임져야 하는 셈이다.

정부는 지방소멸대응기금을 통해 의료와 복지 인프라를 확충하겠다고 한다. 의성군도 2022년부터 2025년까지 276억 원을 확보했다. 공공병원 설립, 방문 의료 서비스 확대, 스마트 돌봄 시스템 구축. 계획은 거창하다. 그런데 김영숙 씨가 만난 어르신들에게 가장 시급한 건 병원이 아니라 문턱을 낮추는 일이었다. 거실에서 화장실까지 갈 때 잡을 수 있는 손잡이였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신체의 기본적인 움직임을 보조하는 물리적 환경 없이는 무용지물이다.

우에노 치즈코는 '상부상조의 관계'와 '일방적 돌봄의 관계'를 구분한다. 전자는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수평적 관계지만, 후자는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명확히 나뉘는 수직적 관계다. 고령화 사회의 돌봄이 후자로만 이해될 때, 노인은 '짐'이 된다. 하지만 김영숙 씨가 방문한 집에서 받은 건 일방적인 감사가 아니었다. 직접 담근 김치 한 포기, 마당에서 키운 배추, 오래된 사진 속 이야기들. 그들은 받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여전히 무언가를 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초고령사회를 걱정하는 목소리는 많다. 생산가능인구 감소, 의료비 증가, 연금 고갈. 모두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걱정의 시선이 노인을 '문제'로만 바라보게 만들지는 않을까. 김영숙 씨가 오늘 만난 다섯 명의 노인은 각자의 방식으로 하루를 살아내고 있었다. 텃밭을 가꾸고, 이웃과 수다를 떨고, 손자에게 전화를 걸고. 그들에게 필요한 건 특별한 보살핌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을 이어갈 수 있는 환경이었다.

돌봄은 무겁다. 하지만 그 무게를 개인에게만 지우면 모두가 짐이 된다. 사회가 함께 져야 할 무게다. 그것도 '베푸는' 마음이 아니라 '함께 사는' 마음으로.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언젠가 늙고, 언젠가는 도움이 필요한 존재가 될 테니까.

해가 저물 무렵, 김영숙 씨는 마지막 집을 나섰다. 수첩엔 오늘 하루 발견한 위험 요소들이 빼곡했다. 내일은 이것들을 정리해서 군청에 제출할 것이다. 얼마나 반영될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내일도 또 다른 집을 방문할 것이다. 문턱을 재고, 손잡이를 확인하고, 무엇보다 안부를 묻기 위해. 그것이 그녀가 생각하는 돌봄의 시작이었다.

전국 초고령 시군구 현황
출처: 통계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