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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세상을 보다 11월 1째주] 공공의료 데이터

AI가 약속한 미래와 17건이라는 현실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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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의학의 탄생
임상의학의 탄생
미셸 푸코
임상의학의 탄생미셸 푸코 · 1963

2025년 11월 초, 감사원이 발표한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보건의료 공공데이터의 AI기업 제공 실적, 17건. 수개월간의 감사 결과였다.

17건이라니. 매일같이 AI 혁신을 외치는 시대에 이 숫자는 무엇을 말하는가. 데이터는 21세기의 원유라 했던가. 그런데 우리는 원유를 땅속에 묻어두고 있는 셈이다. 아니, 어쩌면 파낼 삽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했는지도.

미셸 푸코는 <임상의학의 탄생>에서 18세기 말 프랑스 병원의 변화를 추적했다. 환자를 분류하고, 증상을 기록하고, 통계를 만들기 시작한 시대. 의학이 개인의 경험에서 집단의 지식으로 전환되던 순간이었다. 푸코가 주목한 건 이 전환의 정치성이었다. 누가 데이터를 만들고, 누가 해석하며, 누가 사용하는가.

오늘날 의료 데이터를 둘러싼 풍경은 어떤가.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심사평가원에는 수십 년간 축적된 진료 기록이 잠들어 있다. 혈압과 혈당, 처방전과 수술 기록. 한 사회의 건강 지도가 그 안에 있다. 그러나 접근은 제한적이다. 개인정보 보호라는 명분 아래, 혹은 관료적 타성 속에서.

물론 개인정보 보호는 중요하다. 의료 데이터만큼 민감한 정보가 또 있을까. 하지만 보호와 활용 사이의 균형점을 찾지 못한다면? 데이터는 그저 디지털 무덤 속에서 썩어갈 뿐이다.

푸코는 의학적 시선이 권력의 한 형태라고 봤다. 환자를 관찰하고 분류하는 행위 자체가 통치의 기술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의료 AI는 누구를 위한 시선인가. 17건이라는 숫자는 우리가 아직 이 질문에 답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공공의료 데이터의 활용이 저조한 이유는 복잡하다. 법적 규제, 기술적 한계, 부처 간 칸막이.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공공성에 대한 상상력 부재가 아닐까. 데이터를 공공재로 보는 시각, 그것을 통해 더 나은 의료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 말이다.

한국의 의료 시스템은 세계적으로도 우수하다고 평가받는다. 건강보험 체계, 의료 접근성, 진료 수준. 그런데 왜 데이터 활용에서는 이토록 뒤처져 있을까. 혹시 우리는 20세기의 성공에 안주한 채 21세기의 가능성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푸코가 오늘의 한국 의료 현장을 본다면 무엇이라 했을까. 아마도 그는 17건이라는 숫자 뒤에 숨은 권력관계를 물었을 것이다. 누가 데이터를 통제하고, 누가 배제되며, 그 결과 누가 이익을 보는가.

의료는 결국 사람을 위한 것이다. AI도, 데이터도 마찬가지다. 17건에서 시작해도 좋다. 중요한 건 방향이다.

국내 의료기관 전자의무기록(EMR) 도입률
출처: 보건복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