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이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얼굴의 변화를 알아채듯, 이 나라도 조용히 늙어가고 있다. 올해 국민연금 수급자가 800만 명을 넘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1988년 제도가 시작된 이래 38년 만의 일이다. 숫자는 건조하지만 그 안에는 수백만 개의 삶이 담겨 있다.
800만이라는 숫자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누군가는 재정 고갈을 걱정하고, 누군가는 노후 보장을 염려한다. 하지만 정작 우리가 놓치고 있는 건 따로 있을지도 모른다. 나이듦이 단순히 생물학적 현상이 아니라 사회적 구성물이라는 사실 말이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노년』에서 묻는다. 왜 우리는 노인을 '타자'로 만드는가. 그는 노년이 개인의 문제가 아닌 문명의 실패라고 진단한다. 늙음을 쇠락으로만 보는 시선, 생산성으로 인간을 재단하는 논리, 세대를 갈라치는 담론들. 이 모든 것이 노년을 고립시킨다.
보부아르의 통찰은 1970년 프랑스를 넘어 2024년 한국에도 유효하다. 아니, 어쩌면 더 절실하다. 한국의 고령화 속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 2000년 고령화사회에 진입한 지 불과 18년 만에 고령사회가 됐다. 프랑스가 115년, 독일이 40년 걸린 길을 한국은 숨 가쁘게 달려왔다.
속도가 문제일까. 보부아르라면 다르게 물었을 것이다. 우리는 늙어가는 이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연금 수급자 800만을 부담으로만 볼 것인가, 아니면 다른 가능성을 상상할 것인가. 그는 책에서 강조한다. 노년은 젊음의 연장선이며, 한 인간의 총체적 삶의 일부라고.
통계청 자료를 보면 65세 이상 고령자의 경제활동참가율은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2019년 33.1%에서 2024년 36.2%로 상승했다. 이들은 단순히 일자리가 필요해서만 일하는 게 아니다.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고,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 한다. 보부아르의 표현을 빌리면 '살아있음을 증명하려는 투쟁'이다.
중국이 K-의료에 주목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고령화는 위기가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의 영역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우리가 그 가능성을 볼 준비가 되어 있는가다. 800만 명의 연금 수급자를 숫자로만 볼 것인가, 800만 개의 서로 다른 이야기로 볼 것인가.
보부아르는 말한다. 한 사회가 노인을 대하는 방식이 곧 그 사회의 진짜 모습이라고. 우리는 지금 어떤 모습인가. 당신이 거울 앞에서 자신의 늙음을 마주할 때, 그것은 단순히 당신만의 일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늙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때다.
나이듦은 예외가 아니라 보편이다. 당신도, 나도, 우리 모두 그 길 위에 있다. 문제는 그 길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다. 보부아르가 반세기 전에 던진 질문이 여전히 무겁게 남아있다. 우리는 어떤 노년을 준비하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