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이 태어난 고향은 지금도 그대로 있을까. 어린 시절 뛰놀던 골목, 학교 가는 길에 들르던 문방구, 친구들과 몰려다니던 시장통. 그 풍경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는 걸 당신은 언제 알아차렸는가.
충북 옥천군이 인구 5만 명 선을 간신히 지켜내고 있다. 2025년 12월 말 4만9천601명. 아슬아슬한 숫자다. 정부는 소멸위기 지역을 살리겠다며 반값여행 정책을 내놨지만, 정작 해당 지역이 져야 할 부담은 7할에 달한다. 관광객은 반값에 여행하고, 지역은 나머지를 메운다. 이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정책일까.
일본의 사회학자 마스다 히로야가 쓴 『지방소멸』은 충격적인 미래를 그려냈다. 2040년까지 일본의 896개 자치단체가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 젊은 여성 인구가 절반 이하로 줄어든 지역은 회복 불가능한 소멸 단계에 접어든다는 분석이었다. 그의 경고는 단순한 인구 감소를 넘어선다. 한 지역이 사라진다는 것은 그곳에 축적된 문화와 기억, 삶의 방식 전체가 증발한다는 의미다.
마스다는 도쿄 일극집중이 지방을 죽인다고 했다. 젊은이들이 수도권으로 빨려 들어가고, 남은 사람들은 늙어간다. 병원이 문을 닫고, 학교가 폐교되고, 버스 노선이 끊긴다. 삶을 지탱하던 기반이 하나씩 무너질 때, 사람들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한다. 악순환의 고리다.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2015년 89개였던 소멸위험지역이 2023년 109개로 늘었다. 전체 시군구의 절반에 가까운 숫자다. 충북만이 아니다. 전남, 경북, 강원의 군 단위 지역들이 줄줄이 위험 신호를 보내고 있다. 인구가 줄어든다는 건 단순히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품고 있던 그 지역만의 이야기가 사라진다는 뜻이다.
정부는 관광 활성화로 지역을 살릴 수 있다고 믿는 듯하다. 의성군은 사계절 관광지로 변신을 꾀하고, 각 지자체는 축제와 이벤트로 관광객을 유치하려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마스다가 지적했듯, 관광은 지역 경제의 일시적 부양책일 뿐이다. 진짜 필요한 건 그곳에서 살아갈 사람들이다. 일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고, 늙어가도 괜찮은 곳. 그런 터전을 만드는 일이다.
지방소멸을 막는다며 내놓은 정책들을 보면 의문이 든다. 왜 항상 외부에서 사람을 끌어오는 방법만 생각할까. 이미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떠나지 않게 하는 것이 먼저 아닐까. 청년들이 고향을 떠나는 이유는 단순하다. 일자리가 없고, 문화생활을 즐길 곳이 없고, 미래를 그릴 수 없기 때문이다.
마스다는 작은 거점 도시를 중심으로 주변 지역을 묶는 콤팩트 시티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모든 지역을 다 살릴 수는 없다는 현실적 판단이었다. 선택과 집중. 냉정하지만 피할 수 없는 결론이었다. 한국도 비슷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모든 곳을 살리겠다는 환상과 일부를 포기해야 한다는 현실 사이에서.
한 도시가 사라진다는 것. 그것은 지도에서 이름 하나가 지워지는 일이 아니다. 누군가의 고향이, 추억이, 삶의 터전이 통째로 사라지는 일이다. 우리는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놓아야 할까. 이 질문 앞에서 정책 입안자들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답을 찾아야 한다.
당신의 고향은 10년 후에도 그 자리에 있을까. 아니, 당신은 그곳이 사라지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는가. 때로는 그리워하면서도 돌아가지 않는 곳. 우리가 지방소멸을 막을 수 없는 진짜 이유는 어쩌면 거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