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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세상을 보다 12월 2째주] 경제총조사

숫자로 포착되지 않는 삶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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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를 믿는다는 것
숫자를 믿는다는 것
테드 포터
숫자를 믿는다는 것테드 포터 · 2020

마산회원구의 한 공무원이 태블릿을 들고 골목을 걷는다. 2025년 기준 경제총조사를 위해 사업체들을 방문하는 길이다. 한 치킨집 앞에서 잠시 멈춘다. 문은 닫혀 있고, 유리창엔 '임대문의' 스티커가 붙어 있다. 그는 화면을 몇 번 터치하고 다음 가게로 향한다. 폐업. 이 단어 하나로 누군가의 시간이 정리된다.

경제총조사는 5년마다 돌아온다. 국가가 경제 전체를 스냅샷처럼 찍어내는 작업이다. 얼마나 많은 사업체가 있고, 몇 명이 일하며, 매출은 어떠한가. 이 거대한 집계는 정책의 토대가 되고 예산 배분의 근거가 된다. 하지만 조사원이 태블릿에 입력하는 순간, 무언가는 사라진다. 가게 주인이 새벽 4시에 일어나던 날들, 단골손님과 나눈 농담들, 폐업을 결심하던 밤의 한숨들.

통계학자 테드 포터는 《숫자를 믿는다는 것》에서 근대 국가와 숫자의 관계를 파헤친다. 19세기 프랑스에서 시작된 인구조사부터 오늘날의 빅데이터까지, 권력은 늘 세상을 숫자로 환원하려 했다. 복잡하고 모호한 현실을 단순하고 명확한 수치로 바꾸는 것. 그것이 통치의 시작이었다.

포터가 주목하는 것은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번역의 폭력'이다. 한 농부의 삶이 '농업 종사자 1명'으로, 동네 빵집이 '제조업 사업체 1개소'로 변환될 때 무엇이 남고 무엇이 지워지는가. 통계는 객관적이고 중립적이라고 하지만, 실은 특정한 방식으로 세상을 재단한다. 측정 가능한 것만 존재하는 것처럼 만드는 마법.

한국의 자영업자 수는 2019년 568만 명에서 2023년 575만 명으로 소폭 증가했다. 하지만 이 숫자는 진실의 절반도 말하지 않는다. 같은 기간 폐업률은 계속 높아졌고, 신규 창업자의 생존율은 갈수록 낮아진다. 더 중요한 것은 이들이 왜 자영업을 선택했는가 하는 물음이다. 정년 후 갈 곳이 없어서? 회사에서 밀려나서? 아니면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경제총조사가 포착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편의점 사장이 느끼는 불안, 카페 주인의 피로, 식당 사장의 외로움. 이런 감정들은 어떤 항목에도 들어가지 않는다. 매출액, 종업원 수, 영업이익. 숫자들은 깔끔하지만 차갑다. 그 뒤에 숨은 이야기들은 조사표 밖으로 흘러넘친다.

포터는 묻는다. 우리가 숫자를 믿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이 진실이어서가 아니라, 복잡한 현실을 단순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은 아닐까. 갈등과 모순, 예외와 특수성을 모두 제거하고 깨끗한 도표로 정리해주는 편리함. 하지만 그 편리함의 대가는 누가 치르는가.

마산회원구의 조사는 내년 5월까지 계속된다. 수만 개의 사업체가 데이터베이스에 입력되고, 보고서가 만들어지며, 정책이 수립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닫힌 치킨집 주인은 통계에서 사라진다. 실업자도 아니고 취업자도 아닌, 분류 불가능한 존재로.

그 공무원은 다음 골목으로 들어선다. 태블릿 화면이 햇빛에 반짝인다. 오늘도 누군가의 삶을 숫자로 옮기는 일이 계속된다.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이해하는 대신 분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숫자 뒤에 묻힌 사람들을 보지 못한 채.

한국 자영업자 수 추이
출처: 통계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