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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세상을 보다 12월 3째주] 창작자의 소멸

AI가 만드는 풍요와 인간이 잃는 의미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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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발터 벤야민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발터 벤야민 · 1936

네이버가 5년간 창작자에게 지급한 수익이 4조 1500억 원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같은 시기, AI가 인간의 창작 영역을 하나씩 대체하고 있다는 불안도 커졌다.

숫자는 창작의 황금기를 말하는 듯하다. 플랫폼은 성장했고 창작자는 돈을 벌었다. 그런데 왜 창작자들의 표정은 밝지 않을까.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콘텐츠만 살아남는 세상에서, 창작은 무엇을 위한 행위인가.

월터 벤야민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아우라의 소멸을 예언했다. 1936년의 일이다. 사진과 영화가 회화의 유일성을 파괴할 때, 그는 복제 기술이 예술의 본질을 바꿀 것임을 직감했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그 예언의 극단적 실현일까.

벤야민이 본 것은 단순한 기술 변화가 아니었다. 원본과 복제의 경계가 무너질 때, 창작자와 수용자의 관계도 달라진다. 오늘날 AI는 이 경계를 아예 지워버린다. 창작자가 누구인지조차 묻기 어려운 시대가 왔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조사를 보면, 2023년 콘텐츠 창작자 중 37%가 AI 도구를 활용했다. 2021년엔 11%였다. 2년 만에 세 배가 넘게 늘었다. 효율은 높아졌지만, 창작자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플랫폼의 논리는 명확하다. 더 많은 조회수, 더 긴 체류 시간. 창작자는 이 논리에 최적화된 콘텐츠를 만든다. AI는 그 최적화를 돕는다. 하지만 최적화된 창작이 과연 창작일까. 벤야민이라면 무엇이라 답했을까.

그는 아우라의 소멸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했다. 대중이 예술에 접근할 기회가 늘어난다는 점에서다. 오늘의 플랫폼도 비슷한 논리를 편다. 누구나 창작자가 될 수 있는 시대라고.

문제는 모두가 창작자가 될 때, 창작의 의미가 희미해진다는 것이다. 4조 원이 넘는 돈이 창작자에게 갔지만, 그들 중 얼마나 많은 이가 자신을 진정한 창작자로 느낄까. 알고리즘의 노예가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기술은 늘 양면적이다. 가능성을 열면서 동시에 무언가를 닫는다. AI 시대의 창작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전에 없던 도구를 얻었지만, 창작이 무엇인지 다시 물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벤야민의 통찰은 여전히 날카롭다. 기술이 바꾸는 것은 단지 생산 방식이 아니다. 우리가 세계를 인식하고 표현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진다. 지금 창작자들이 느끼는 불안은 바로 그 변화의 징후다.

국내 콘텐츠 창작자 AI 도구 활용률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