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스코, 한화, HD현대. 올해 신년사에서 이들 기업이 공통으로 강조한 단어가 있다. 안전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산업현장의 풍경이 달라졌다고들 한다. 그런데 정말 달라진 걸까.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위험사회』에서 현대의 위험이 갖는 특별한 성격을 지적했다. 과거의 위험이 눈에 보이는 것이었다면, 현대의 위험은 보이지 않는다. 방사능처럼, 미세먼지처럼, 그리고 산업현장의 구조적 위험처럼.
1986년 체르노빌, 2011년 후쿠시마. 벡이 말한 '위험의 민주화'가 무엇인지 보여준 사건들이다. 위험은 더 이상 특정 계층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여전히 누군가는 위험에 더 가까이 있다. 건설현장의 일용직 노동자, 조선소의 하청업체 직원, 제철소의 협력사 근로자. 법은 바뀌었지만 위험의 분배는 여전히 불평등하다.
통계가 말해주는 것도 있고, 말해주지 않는 것도 있다. 산업재해 사망자 수는 줄어들고 있다. 2021년 2,080명에서 2025년 1,810명으로. 하지만 이 숫자 뒤에는 여전히 매일 5명이 일터에서 목숨을 잃는다는 현실이 있다. 줄어든 것이 아니라 여전히 많은 것 아닌가.
벡은 위험이 '부메랑 효과'를 갖는다고 했다. 위험을 생산한 사람들에게도 결국 그 위험이 돌아온다는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만들어낸 것은 바로 이 부메랑이다. CEO가 구속되고, 기업 이미지가 추락한다. 그제야 안전이 신년사의 첫 번째 키워드가 된다.
하지만 진짜 변화는 무엇일까. 안전교육 시간이 늘어나고, 보호장구가 개선되고, 매뉴얼이 두꺼워진다. 형식은 갖춰진다. 그런데 하청의 하청으로 이어지는 위험의 사슬은 끊어지지 않는다. 정규직은 관리하고, 비정규직은 일한다. 위험의 최전선은 여전히 같은 자리다.
벡이 던진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어떤 미래를 원하는가. 기술이 발전할수록 새로운 위험이 생겨난다. AI가 판단하고 로봇이 작업하는 현장에서도 누군가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 누군가는 또다시 가장 약한 고리일 것이다.
안전은 비용이 아니라 투자라고들 말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투자가 서류와 시스템에만 머문다면. 위험은 여전히 민주적이지 않다. 어떤 이들에게는 여전히 더 가깝고, 더 일상적이고, 더 치명적이다.
『위험사회』가 출간된 지 40년이 지났다. 한국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4년째다. 무엇이 바뀌었고 무엇이 바뀌지 않았는가. 신년사의 안전이 현장의 안전이 되려면 얼마나 더 걸릴까. 아니, 정말 그것이 가능하기는 한 걸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