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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세상을 보다 1월 3째주] 중대재해와 안전

위험을 감수하는 사회, 그 대가는 누가 치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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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사회
위험사회
울리히 벡
위험사회울리히 벡 · 1986

출근길 지하철 안. 한 중년 남성이 헬멧을 무릎에 올려놓고 졸고 있다. 작업복 곳곳에 묻은 시멘트 가루가 하얗게 말라있다. 옆자리 승객이 슬쩍 자리를 비킨다. 그의 거친 손등에는 크고 작은 상처들이 지도처럼 그려져 있다.

이번 주 재계는 중대재해로 술렁였다. 포스코, 한화, HD현대 등 대기업들의 신년사에 '안전'이라는 단어가 유독 많이 등장했다. 철강, 조선, 건설. 이들 산업은 구조적으로 사고 위험이 크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이런 기업들이 언제든 표적이 될 수 있어 상시적인 긴장 상태에 놓여있다고 말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기업들은 안전 투자를 늘리고 있다. 하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다르다. 위험은 여전히 일상이고, 사고는 개인의 부주의로 처리되곤 한다. 법과 제도가 강화되어도 위험을 떠안는 건 결국 노동자들이다.

일본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위험사회》에서 현대사회의 위험이 계급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부유층은 위험을 회피할 수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위험을 감수해야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 위험의 분배가 부의 분배만큼이나 불평등하다는 것이다.

한국의 산업재해 사망률은 OECD 국가 중 최상위권이다. 2023년 기준 노동자 10만 명당 사망자 수는 5.5명. 독일(0.8명)의 7배, 일본(1.4명)의 4배에 달한다. 숫자 뒤에는 누군가의 아버지, 어머니, 자녀가 있다.

위험은 돈으로 계산된다. 위험수당, 산재보상금, 기업의 벌금. 하지만 생명의 가치를 숫자로 환산할 수 있을까. 한 건설 노동자는 말한다. 위험수당 몇 만원 더 받는다고 해서 떨어지면 죽는 건 똑같다고.

벡은 위험이 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도 했다. 전문가들만이 위험을 정의하고 관리하면서, 시민들은 수동적인 피해자가 된다. 중대재해를 둘러싼 논의도 마찬가지다. 기업과 정부가 주도하는 동안, 정작 위험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기업들이 ESG 경영을 강조하고 안전 시스템을 구축한다고 한다. 그러나 하청의 하청으로 이어지는 구조에서, 가장 위험한 일은 가장 약한 고리가 담당한다. 대기업 본사의 안전한 사무실과 하청업체의 위험한 현장 사이의 거리는 얼마나 멀까.

지하철에서 내린 그 남성이 공사 현장으로 향한다. 오늘도 그는 높은 곳에 올라갈 것이다. 누군가는 그의 노동으로 지어진 건물에서 안전하게 일할 것이다.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과 그 결과를 누리는 사람이 다른 사회. 우리는 이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건 아닐까.

안전은 비용이 아니라 권리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사치다. 출근길 졸던 그 남성의 헬멧이 바닥에 떨어진다. 잠에서 깬 그가 황급히 헬멧을 줍는다. 그 찰나의 당황스러운 표정이 오래 남는다.

OECD 주요국 산업재해 사망률
출처: 고용노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