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복도가 텅 비었다. 환자들은 여전히 아프다.
2월 둘째 주,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났다. 정부의 의대 증원 발표에 맞선 집단행동이었다. 수술이 연기되고 진료가 중단됐다. 언론은 의료 대란을 말했고, 정치권은 각자의 입장을 쏟아냈다. 그런데 정작 아픈 사람들의 목소리는 어디에 있었을까.
1970년대 이탈리아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프란코 바살리아는 정신병원의 의사였다. 그는 환자를 가두는 병원 체계에 의문을 품었다. 치료한다는 명목으로 사람을 격리하는 것이 과연 의료인가. 그의 고민은 『자유가 치료다』에 담겼다.
바살리아가 본 것은 단순한 의료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었다. 권력이 어떻게 돌봄의 이름으로 작동하는가였다. 의사는 처방하고, 환자는 따른다. 이 구조 속에서 아픈 사람은 주체가 아닌 대상이 된다. 치료받을 권리는 있지만 치료를 선택할 권리는 없다.
지금 한국의 의료 현장도 마찬가지 아닐까. 의사들은 자신들의 권익을 위해 싸운다고 말한다. 정부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정책이라고 주장한다. 양쪽 모두 옳은 말이다. 그러나 그 사이에서 환자는 어디에 있는가. 진료실 문이 닫힌 날, 약을 받으러 온 노인은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의료는 특별한 영역이다. 생명을 다루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사에게는 특별한 지위가 주어진다. 면허라는 독점적 권한, 전문가로서의 권위. 하지만 이 특별함이 때로는 벽이 된다. 환자와 의사 사이에, 의료와 일상 사이에.
바살리아는 그 벽을 허물려 했다. 정신병원의 문을 열고 환자들을 거리로 내보냈다. 미친 짓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그가 믿은 것은 단순했다. 아픈 사람도 한 명의 시민이라는 것. 병원 안에서만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도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것.
한국의 의료 파업은 어쩌면 우리가 미뤄둔 질문을 꺼내놓았는지 모른다. 의료란 무엇인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전문가의 영역에만 맡겨둘 문제인가. 아니면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할 공동의 과제인가.
파업은 끝날 것이다. 협상이든 강제든 어떤 방식으로든 일단락될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물음은 남는다. 우리는 어떤 의료를 원하는가. 병을 고치는 기술만이 아니라, 사람을 돌보는 관계까지 포함하는 의료를 상상할 수 있을까.
『의료와 자본주의』이 진단하는 의료 시스템의 문제는 치료의 기술이 아니라 돌봄의 구조다. 질병을 고치는 능력은 놀랍게 발전했지만, 누가 어떤 조건에서 치료받을 수 있는가의 문제는 여전히 불평등하다.
한국의 건강보험 제도는 전 국민을 포괄하는 보편적 시스템으로 평가받지만, 보장률은 선진국에 비해 낮다. 비급여 항목이 많아 실질적인 의료비 부담은 환자에게 전가되는 구조다. 제도의 외형과 실질 사이의 간극이 크다.
필수 의료 분야의 의사 부족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다. 소아과, 산부인과, 응급의학과 등 수익성이 낮은 진료과를 기피하는 현상은 의료 시스템의 시장화가 낳은 결과다. 의사 수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이 편중 현상을 해결할 수 없다.
지방의 의료 공백은 더욱 심각하다. 수도권에 의료 자원이 집중되면서 지방 주민들은 기본적인 진료를 위해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의료 접근성의 지역 격차는 생명권의 불평등으로 직결된다.
빈센트 나바로이 던지는 질문은 의료가 상품인가 권리인가다. 이 질문은 한국 사회에서 의료 정책을 둘러싼 갈등의 근저에 놓여 있다. 효율성과 형평성, 시장과 공공성 사이에서 어떤 균형점을 찾을 것인가.
빈 진료실 앞에서 돌아서는 환자의 뒷모습이 묻고 있다. 당신들이 싸우는 동안, 나는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한국의 의료 시스템은 언제나 효율성을 자랑해왔다. OECD 국가 중 최저 수준의 의료비로 최고 수준 기대수명을 달성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파업 하나로 이토록 쉽게 흔들리는 시스템을 과연 견고하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누구를 위한 효율성이었는가.
빈센트 나바로는 『의료와 자본주의』에서 이렇게 쓴다. 의료는 결코 중립적인 과학이 아니며, 권력관계가 작동하는 정치적 영역이라고. 의사의 전문성이라는 이름 아래 환자는 수동적 존재가 되고, 건강은 개인이 관리해야 할 자산이 된다. 아프면 일할 수 없고, 일할 수 없으면 살 수 없는 사회에서 질병은 곧 추락이다.
파업 기간 동안 진료를 미룬 사람들은 대부분 비응급 환자였다고 한다. 당장 죽지 않는다면 참을 수 있다는 판단. 하지만 만성 통증을 안고 사는 것과 건강하게 사는 것 사이의 간극을 우리는 얼마나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는가. 통증은 숫자로 측정되지 않는다. 보험금 지급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다.
한국의 효율성으로 자랑하던 의료 시스템이 파업 하나로 40% 진료 감소라는 심각한 충격을 받았다. 이는 시스템의 견고성의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파업 기간 미뤄진 진료는 대부분 비응급 환자들이었으나, 만성 통증 환자들도 포함돼 있다. 진료비 부담과 접근성 문제로 인한 건강권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
기사는 의료를 상품화하고 건강을 개인 책임으로 돌리는 현 제도의 근본적 문제를 지적한다. 파업은 이러한 구조적 모순을 명확히 드러낸 사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