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은 오늘 몇 번이나 전등 스위치를 눌렀는가. 아침에 일어나 불을 켜고, 커피머신의 전원을 누르고, 노트북을 열면서 우리는 전기가 어디서 오는지 묻지 않는다. 그저 있어야 할 것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어느 재생에너지 기업이 1400억 원의 투자를 받는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왜 지금, 왜 이토록 큰 돈이 움직이는가.
제레미 리프킨은 『3차 산업혁명』에서 에너지 체제의 전환이 곧 문명의 전환이라고 썼다. 석탄에서 석유로, 석유에서 재생에너지로 넘어가는 과정은 단순히 연료를 바꾸는 일이 아니다. 사회 전체의 권력 구조, 생산 방식, 일상의 리듬까지 바꾸는 일이다. 1400억이라는 숫자는 그래서 단순한 투자금이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20세기의 에너지 체계 속에 살고 있다. 중앙집중식 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가 송전탑을 타고 각 가정으로 흘러든다. 누군가 결정하고, 누군가 공급하고, 우리는 받아 쓴다. 이 구조 속에서 개인은 소비자일 뿐이다. 그런데 재생에너지는 이 질서를 흔든다. 옥상의 태양광 패널이 전기를 만들고, 바람이 부는 곳마다 터빈이 돌 수 있다면?
리프킨이 주목한 것은 바로 이 지점이었다. 에너지의 민주화. 누구나 생산자가 될 수 있는 시대. 인터넷이 정보의 흐름을 바꾸었듯이, 분산형 에너지 시스템은 권력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경고한다. 전환에는 막대한 비용이 든다고. 기존 체계의 저항도 만만치 않다고.
한국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2019년 6.5%에서 2023년 9.2%로 늘어났다. 4년 동안 2.7%포인트. 이 속도로 가면 2050년 탄소중립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까. 아니, 더 근본적인 질문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정말로 변화를 원하는가.
발전소 사업에 1400억이 투자된다는 것은 누군가 미래에 돈을 건다는 뜻이다. 하지만 투자자들이 보는 미래와 우리가 살아갈 미래는 같은 것일까. 수익률 그래프 속의 재생에너지와 우리 삶 속의 재생에너지는 어떻게 다른가. 아니면 같은가.
리프킨은 모든 산업혁명이 새로운 에너지원과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만남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증기기관과 인쇄기, 전기와 전화, 그리고 이제는 재생에너지와 인터넷. 그런데 우리는 이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저 지켜보고 있는가.
에너지 전환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상상력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매일 아침 전등을 켤 때, 그 전기가 어디서 왔는지 상상하는 것. 중앙 발전소가 아니라 이웃집 옥상에서, 멀리 떨어진 화력발전소가 아니라 가까운 언덕의 풍력발전기에서 왔다고 상상하는 것. 그런 상상이 현실이 되려면 얼마나 많은 돈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
1400억이라는 숫자 앞에서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수익률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 돈이 만들어낼 변화가 우리가 원하는 변화인지, 우리는 그 변화 속에서 어떤 존재가 될 것인지. 소비자로 남을 것인지, 참여자가 될 것인지. 어쩌면 가장 중요한 투자는 돈이 아니라 우리의 관심일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