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포르마시옹
트럼프

25% 반도체 관세의 그림자 속 한국 'MFN 지위', 안도는 이르고 재협상은 어둡다

김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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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요약
트럼프 행정부가 1962년 통상확장법 232조를 발동해 엔비디아 H200, AMD MI325X 등 고성능 AI 반도체에 25% 관세를 부과했다. 한국은 2025년 11월 한미 관세 협상으로 최혜국(MFN) 지위를 확보한 상태지만, 실제 관세 부과 대상이 고성능 AI 칩에 한정되면서 한국산 HBM·DRAM은 당장 비껴갔다. 그러나 백악관이 예고한 '광범위 반도체 관세'가 실행될 경우 파급은 다시 확대된다.

2026년 1월 14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서명한 대통령 포고령은 세계 반도체 업계에 새로운 국면을 열었다. 1962년 통상확장법 232조(Section 232)를 발동해 반도체, 반도체 제조장비, 그리고 파생 제품에 대한 국가안보 위협을 공식 선언한 것이다. 이에 따라 엔비디아 H200, AMD MI325X 등 이른바 '첨단 컴퓨팅 칩(advanced computing chips)'에 25% 관세가 부과됐다. 2018년 철강·알루미늄 232조 발동 이후 8년 만의 대규모 공급망 안보 조치로 평가된다. 단, 미국 내 데이터센터·연구개발(R&D)·스타트업·부품 수리·비(非)데이터센터용 소비자 제품·공공 용도는 면제 대상이다.

한국은 당장 직접 타격권에서 비껴 있다. 2025년 11월 한미 양국이 체결한 관세 협상 결과에 따라, 한국은 반도체 수출에서 '최혜국(Most Favored Nation, MFN)' 지위를 보장받았다. 다른 경쟁국인 대만·일본·EU와 동일한 관세율이 적용되고, 이들 국가가 받는 어떤 유리한 조건도 한국에 자동 적용되는 구조다. 엔비디아용 HBM(고대역폭메모리) 상당수가 제3국을 거쳐 최종 제품으로 조립된 뒤 미국에 수출되는 공급망 특성상, 이번 1월 조치가 한국 메모리 반도체에 미치는 즉각적 충격은 제한적이라는 게 업계 공통 진단이다.

하지만 안도는 이르다. 백악관 팩트시트에 따르면 이번 조치는 "1단계"이며, 트럼프는 "가까운 시일 내에 반도체 및 파생 제품에 대한 광범위한 관세"를 예고했다. 사실상 2단계 관세가 예정된 셈이다. 백악관은 또한 국내 생산 인센티브를 위한 관세 오프셋 프로그램 도입도 언급했다. 이는 미국 내 팹(반도체 제조시설) 투자 기업에게 관세를 환급하거나 면제하는 방식으로, 삼성·SK하이닉스에게도 미국 현지 투자 확대를 압박하는 지렛대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의 반도체 수출 의존도는 경고등을 켠다. 산업통상자원부 수출입동향에 따르면 2025년 기준 한국 총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20%로 역대 최고 수준이다. 전체 수출의 5분의 1이 반도체 단일 품목에 달린 구조다. 특히 SK하이닉스는 2025년 기준 매출의 72.5%를 미국 시장에서 확보해 대미 의존도가 절대적이며, 삼성전자도 미국이 전체 매출의 22.3%를 차지한다. 미국의 관세가 확대되면 한국 메모리 반도체는 최대 매출 시장에서 직접적 충격을 받는 구조다.

기업들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2024년 착공한 텍사스 테일러 팹 투자 규모를 370억 달러 수준으로 상향 조정했고,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 HBM 팹 양산 일정을 당초 계획보다 앞당기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2026년 삼성·SK하이닉스의 반도체 장비투자액은 전년 대비 27% 급증할 것으로 전망되며, 한국은 대만을 제치고 세계 2위 반도체 투자국으로 올라설 것으로 예상된다. 25% 관세 리스크가 대미 투자 가속의 핵심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 정부도 반응 중이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재정경제부는 3월 말 '한국판 CHIPS법' 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미국 CHIPS법과 유사한 방식으로 국내 반도체 기업에 보조금을 지원하고, 연구개발 인력은 주 52시간 근로시간 상한 적용에서 제외하는 내용이다. 정부는 이를 통해 2030년까지 반도체 연구개발 투자를 현재의 두 배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이 법안은 노동계의 강한 반발에 직면해 있다. 민주노총은 "반도체 산업을 이유로 근로시간 규제를 해제하는 것은 노동기준 전반을 흔드는 위험한 선례"라고 비판했다.

국제 차원에서는 한국이 대만·일본·EU와 공동 대응에 나설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국가별로 '분리 협상'을 예고하고 있어, 집단 협상은 쉽지 않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 관계자는 "반도체 관세에 대한 개별 국가 협정은 각 국가별 고유의 안보 상황, 공급망 의존도, 투자 계획을 반영해 차등 적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한국이 '어떤 패키지'를 내놓느냐에 따라 MFN 지위 내에서의 실질 조건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2026년 하반기 예상되는 2단계 관세의 윤곽이 드러날수록, 한국의 협상 카드도 구체화돼야 한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산업 전략이다. 2020년대 초반까지 한국 반도체는 '메모리 1위, 파운드리 추격자' 구도였다. 2026년 현재는 HBM에서 SK하이닉스가 세계 1위, 파운드리에서 삼성이 TSMC와의 격차를 좁히려 분투하는 형국이다. 관세 환경에서 살아남는 방식은 두 가지다. 미국 현지 생산으로 무관세를 확보하거나, 국내 R&D 투자로 기술 격차를 벌리거나. 정부의 'CHIPS법'과 기업의 대미 투자는 두 경로를 동시에 걷는 시도다. 그러나 이 투-트랙이 국내 일자리 감소와 노동 규제 완화라는 대가를 동반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산업 정책을 넘어 사회적 합의의 문제이기도 하다.

2026년 4월 현재, 한국 반도체는 '최혜국 지위'라는 방패를 들고 있지만, 그 방패가 언제까지 유효할지는 불확실하다. 트럼프 행정부의 232조 발동은 단순한 관세가 아닌,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을 미국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구조 전환의 신호다. 한국은 이 전환의 수혜자가 될 수도, 비용만 치르는 조연이 될 수도 있다. 답은 앞으로 6개월 안에 나올 것이다.

📊숫자로 보는 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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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칩 신규 관세율
미국 백악관 232조 포고령, 2026.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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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 미국 매출 비중
SK하이닉스 사업보고서, 202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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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반도체 장비투자 증가율
글로벌이코노믹 업계 전망, 2025.12
이 기사를 주목해야하는 이유
1
MFN 지위의 유예기간

한미 협상으로 확보한 최혜국 지위는 영구적 보장이 아니라 협상 한 차례의 결과물이며, 2단계 관세 협상에서 재검토될 가능성이 있다.

2
대미 투자의 뒷면, 국내 일자리

한국이 세계 2위 반도체 투자국으로 올라설 전망이지만, 대미 투자 비중 확대는 국내 팹 건설 축소와 맞물려 반도체 산업 고용 구조를 흔들 수 있다.

3
한국판 CHIPS법의 노동 규제

반도체 연구개발 인력의 주 52시간 상한 적용 배제는 산업 경쟁력과 노동기준 사이의 근본적 긴장을 드러낸다.


이 기사는 공공 데이터와 언론 보도를 바탕으로 재구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