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 시골. 낡은 승합차 지붕까지 잔뜩 실린 감자. 감자 장수 게라는 마을을 돌며 한 포대씩 풀어놓는다. 농민들은 현금이 없다. 대신 낡은 텔레비전, 다 해진 구두, 어린 딸이 더는 신지 않는 운동화를 내민다. 게라는 계산기를 꺼내지 않는다. 눈대중으로 값을 매긴다. 거래는 성사되고, 그 자리를 다음 마을이 대신한다.
2018년 탐타 가브리치제 감독의 다큐멘터리 『트레이더』는 이처럼 23분짜리 짧은 이야기다. 대사는 거의 없고, 카메라는 설명하지 않는다. 단지 감자 한 포대와 낡은 주전자가 교환되는 장면을 지켜볼 뿐이다.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단은 이 작품에 월드 다큐멘터리 단편 대상을 수여하며 "세계화의 주변부에서 여전히 작동하는 비공식 경제의 생태계를 압축해 보여준다"고 평했다.
영화의 미덕은 판단의 유보에 있다. 게라의 거래가 '착취'인지 '상부상조'인지, 농민들이 '피해자'인지 '자발적 참여자'인지, 영화는 섣불리 결론 내리지 않는다. 단지 국가 통계에 잡히지 않는 교환이 어떻게 사람을 먹이고, 어떻게 어떤 이들을 더 가난하게 만드는지를 보여준다. 조지아 국가데이터처 국민계정에 따르면 비공식 부문이 전체 GDP의 21.7%를 차지한다(2023년 기준). 게라는 그 5분의 1을 움직이는 수많은 손 중 하나다.
2026년 4월, 이 영화가 다시 호출된다. 중국 동북 3성 국경에서는 '연수·교류' 명목으로 북한 노동자 1만 8천 명이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유엔 안보리 결의 2397호가 2019년 12월까지 의무화한 전면 송환은 공식적으로는 완료됐지만, 비자 우회와 편법 송출로 다시 인력이 오가고 있다. 게라가 감자와 텔레비전을 맞바꾸던 방식과 구조적으로 닮았다. 공식 경제가 금지한 거래를, 비공식 경제가 중단하지 않는 것이다.
차이는 규모에 있다. 게라의 거래는 한 마을을 먹이지만, 국경의 비공식 경제는 핵실험을 먹인다. 한국 통일연구원의 2026년 3월 보고서는 북한 노동자 1인당 연간 순수입을 5천~8천 달러로 추산한다. 1만 8천 명의 합은 최대 1억 4천만 달러. 2025년 북한이 단거리 탄도미사일 시험발사에 투입한 것으로 추정되는 비용(약 7천만 달러)의 두 배에 해당한다. 감자 한 포대와 낡은 운동화가 마을의 점심이 되듯, 국경을 넘는 노동과 송금은 미사일의 연료가 된다.
『트레이더』는 제재의 언어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저 "존재하는 것은 흘러간다"는 경제의 원리를 조용히 보여줄 뿐이다. 게라가 말한다. "사람들은 현금이 없어도 살아야 하니까, 뭔가는 돌아야 한다." 2026년 4월, 이 문장은 국제 제재 체제가 얼마나 허술한지를 가장 간결하게 설명한다. 공식 채널이 닫혀도, 비공식 경로는 감자 장수의 승합차처럼 계속 움직인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게라의 승합차는 먼지 가득한 길을 따라 다음 마을로 떠난다. 카메라는 멀어지는 차를 오래 비춘다. 감자는 마을을 먹이고, 게라는 도시로 돌아가고, 마을 사람들은 다음 주에 다시 그를 기다릴 것이다. 2026년 국경은 이보다 훨씬 큰 차원에서 같은 움직임을 반복한다. 거래는 멈추지 않는다. 오직 그 거래가 무엇을 먹이는지가 달라질 뿐이다.
조지아 농촌과 북중 국경은 규모와 맥락은 다르지만, 공식 제도가 닿지 않는 틈에서 자본이 작동하는 구조는 동일하다.
"사람들은 살아야 한다"는 영화 속 한 문장은 국제 제재 레짐이 맞닥뜨리는 근본적 벽을 가장 간결하게 드러낸다.
감자 한 포대의 거래에서 핵·미사일 자금까지, 영화는 일상의 거래가 거대 구조에 어떻게 편입되는지를 사유하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