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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세상을 보다 4월 2째주] 제재의 한계

『제재의 시대(The Art of Sanctions, 2018)』가 보여주는 국제 제재의 구조적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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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요약
리처드 네피우(Richard Nephew)의 『The Art of Sanctions: A View from the Field』(2018)는 오바마 행정부에서 이란 제재 설계 실무를 이끌었던 저자가 쓴 제재 실무서다. 그는 제재의 효과가 "고통을 가하는 능력"이 아니라 "고통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2026년 4월 북한 노동자의 중국 유입이 재개되고, 유엔 전문가 패널 해체 이후 2년이 지난 시점. 이 책은 제재가 왜 지금 무력화되고 있는지를 구조적으로 설명한다.

리처드 네피우는 2013~2015년 오바마 행정부 국가안보회의(NSC)에서 이란 제재 조율관을 맡았다. 이란 핵협정(JCPOA) 협상의 막후에서 '압박과 완화의 리듬'을 설계한 인물이다. 퇴직 후 그는 컬럼비아대 국제공공정책대학원 수석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겨 2018년 이 책을 펴냈다. 원제목은 『제재의 기술: 현장에서 본 시각』. 국내에는 『제재의 기술』이라는 제목으로 부분 번역되어 소개된 바 있다.

이 책은 학술서가 아니다. 정책 실무서이자 일종의 회고록이다. 네피우는 제재 설계의 원칙을 네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목표는 구체적이어야 한다. "나쁜 정권을 무너뜨린다"가 아니라 "특정 행위를 중단시킨다"가 되어야 한다. 둘째, 고통은 정교해야 한다. 전면 봉쇄는 대상을 파괴하지만 협상 레버리지를 소멸시킨다. 셋째, 제재는 풀 수 있어야 한다. 해제 가능성이 없는 제재는 '억제'가 아니라 '처벌'에 그친다. 넷째, 다자 체제가 필수다. 한 국가만의 제재는 우회 경로를 낳는다.

네피우의 네 원칙을 2026년 대북 제재에 대입해 보면, 구조적 붕괴의 이유가 보인다. 첫 번째 원칙에서 대북 제재는 '비핵화'라는 추상적 목표에 묶여 있다. 그래서 어떤 완화도 '비핵화 진전'과 연계돼야 하는데, 북한이 이를 거부하면 제재는 영구화된다. 두 번째 원칙, 고통의 정교함. 2016~2017년 결의안들은 석탄·섬유·해외 노동자 송환 등 거의 모든 외화 수단을 동시에 제거했다. 네피우의 관점에서 이는 '전면 봉쇄'에 가까우며, 레버리지를 소멸시킨 과잉 설계다.

세 번째 원칙은 더 치명적이다. 해제 메커니즘이 없다. 유엔 결의 2397호 등은 북한이 무엇을 하면 어느 조항이 풀리는지에 대한 구체 조항이 부재하다. 북한 입장에서는 '모든 것을 포기해도 모든 것이 풀리지 않을 수 있다'는 불확실성이 있고, 이는 대화 동기를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네 번째 원칙, 다자성. 2024년 4월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감시 패널이 러시아의 거부권으로 해체된 이후, 국제 감시 체계는 사실상 공백이다. 2024년 10월 미국·한국·일본 등 11개국이 출범시킨 다자간 감시팀(MSMT)은 유엔 패널과 달리 법적 구속력이 없다.

2026년 4월 한반도 국경 지대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이 구조적 결함의 귀결이다. 중국 동북 3성으로 북한 노동자 약 1만 8천 명이 '연수·교류' 명목으로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통일연구원 보고서는 이로 인한 연간 외화 유입 최대치를 1억 4천만 달러로 계산한다. 제재의 고통은 있지만 제재를 푸는 길은 없고, 감시하는 체계는 무너졌으며, 대상국은 비공식 경로로 우회한다. 네피우가 경고한 "무력화된 제재는 정권을 강화한다"는 명제가 고스란히 현실이 된다.

책의 가장 흥미로운 구절은 이란 협상 과정을 복기한 4장에 있다. 네피우는 2012년 미국이 이란 중앙은행을 제재하자 이란 내 중산층이 급속히 빈곤화됐다고 쓴다. 식료품 가격이 3배로 뛰고 외환 보유고가 바닥났다. 그러나 이 경제적 고통은 역설적으로 '하산 로하니'라는 협상파 지도자의 당선을 만들어냈고, 결국 핵협정으로 이어졌다. 제재는 고통을 가할 뿐 아니라, 그 고통이 정치적 선택으로 번역될 수 있을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

북한은 이 '번역 회로'가 막혀 있다. 경제적 고통이 정치 체제 내부의 다른 선택지로 이어지지 않는다. 북한 주민에게 투표 선택지는 없고, 엘리트 내부의 정책 토론 공간도 좁다. 네피우의 모델은 이란에서는 작동했지만, 북한에서는 작동하지 않았다. 그의 책이 2018년에 쓰여지고도 오늘 다시 읽히는 이유는, 그가 자신의 성공 사례만큼 실패의 구조도 투명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같은 책의 7장에서 그는 이렇게 쓴다. "제재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제재 자체가 정책 목표가 되는 순간, 우리는 진짜 목적을 잃는다." 2026년 한국에 이 문장은 무겁다. 북한 핵능력은 계속 고도화되고, 제재망은 공동화되며, 대북 외교 레버리지는 약해진다. 제재를 유지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버린 상태에서, 한국은 '무엇을 위한 제재인가'를 재검토해야 한다.

이번 주 추천 독서: 리처드 네피우, 『The Art of Sanctions: A View from the Field』(Columbia University Press, 2018, 216p). 한국어 부분 번역본 있음. 병행 독서로는 이근관 『유엔 제재의 국제법적 검토』(대한국제법학회, 2023)와 정재흥 『제재의 정치경제학』(서울대 출판부, 2024)을 추천한다. 2026년 4월, 북한 노동자 유입 재개와 MSMT 보고서를 함께 읽으면 이 책의 무게가 달라진다.

이 기사를 주목해야하는 이유
1
제재 이론과 현실의 괴리

네피우의 네 원칙(목표·정교함·해제 가능성·다자성)은 대북 제재의 구조적 결함을 설명하는 가장 효율적인 프레임이다.

2
이란의 성공과 북한의 실패

경제적 고통이 정치적 선택으로 번역되는 회로가 막힌 체제에서는, 제재 자체의 효과가 제한적임을 역사적 비교로 확인할 수 있다.

3
'무엇을 위한 제재인가'

MSMT 출범 이후에도 공백을 메우지 못하는 제재 레짐 앞에서, 한국 외교는 '제재를 유지할 것인가'가 아닌 '무엇을 위해 유지할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