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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세상을 보다 4월 2째주] 사용자성, 13년의 질문

이병훈 외 『사장님도 아니야 노동자도 아니야』와 노란봉투법 이후의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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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요약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등 연구진이 13년 전 펴낸 『사장님도 아니야 노동자도 아니야』(창비, 2013)는 '누구의 노동자인지 규정되지 않는 사람들'의 존재를 포착한 선구적 작업이다. 2026년 3월 10일 노란봉투법 시행, 4월 7일 포스코 7,000명 직고용 발표, 4월 16일 대법 확정이라는 연쇄적 사건 앞에서, 이 책이 제기한 '사용자성' 질문은 13년 만에 법 조문의 문제로 구체화됐다.

이병훈 중앙대 명예교수는 1993년 이후 한국 노동시장의 원·하청 구조를 연구해 온 사회학자다. 그가 이주환·강은애·홍석범·김종진과 함께 2013년 11월 창비에서 펴낸 『사장님도 아니야 노동자도 아니야—특수고용노동자 이야기』는 당시 제도의 사각지대에 있던 보험설계사·학습지교사·택배기사·레미콘기사·화물운송기사·퀵서비스 기사 등을 본격적으로 조명한 국내 학계의 초기 종합 보고서다. 책의 핵심 질문은 제목 그 자체다. "근로계약이 없으니 노동자가 아니고, 독립 경영이 없으니 사장도 아닌 사람들은 누구의 책임 아래 놓여야 하는가."

저자의 가장 날카로운 관찰은 '하청 노동의 비가시성'이다. 한국의 원·하청 구조는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30년에 걸쳐 정착됐다. 대기업은 직접 고용을 줄이고, 도급·파견·용역으로 전환했다. 그 결과 제조업 생산 현장의 상당수는 대기업 정규직이 아니라 협력업체 소속 노동자가 담당한다. 그러나 이들은 같은 공간에서 같은 공정을 수행하면서도, 통계·교섭·사회보험·재해 보상에서 별개의 존재로 분류된다. 이 분리가 한국 노동시장 양극화의 뿌리다.

이병훈은 이 구조가 가져온 세 가지 결과를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첫째, 임금 격차. 고용노동부 '2024년 6월 기준 고용형태별근로실태조사'에서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시간당 임금 수준은 약 66.4%, 대기업(300인 이상) 정규직 대비 중소기업(5~299인) 비정규직은 41.5% 수준이다. 둘째, 안전 격차. 고용노동부 산업재해 통계에 따르면 사고 사망자 중 하청 노동자 비중은 2000년대 중반 약 33% 수준에서 2024년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 기준 47.7%로 올라갔다. 셋째, 교섭 격차. 2023년 기준 전체 노조 조직률은 13.0% 안팎이며,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조직률 격차는 3배 이상이다. 이 세 가지 격차가 맞물리면 '위험과 저임금의 외주화'라는 단일 현상이 완성된다.

2026년 봄의 장면들은 13년 전 이 책이 던진 질문 위에 정확히 포개진다. 3월 10일 시행된 개정 노조법(노란봉투법)은 '사용자'의 정의를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자"까지 넓혀, 원청이 하청 노동자의 교섭 상대가 될 수 있게 했다. 저자들이 2013년에 제기한 "책임지는 사용자가 누구인가"라는 근본 질문에 대한 부분적 법제화다. 4월 7일 포스코가 협력사 7,000명 직고용을 발표한 것은, 법 개정이 기업의 자발적 선제 대응을 이끌어낸 첫 대형 사례다. 대법원은 4월 16일 포스코 소송 215명 승소를 확정했다.

그러나 『사장님도 아니야 노동자도 아니야』의 결론은 낙관적이지 않았다. 책의 마지막 장에서 저자들은 특수고용의 형태는 바뀌어도 책임을 회피하려는 고용 전략의 본질은 반복된다는 경고를 남긴다. 2013년의 진단은 2026년에도 유효하다. 노란봉투법 시행 첫 달, 일부 대기업 계열의 외주 발주가 전년 동월 대비 눈에 띄게 감소했다는 관측이 이어지고 있다(구체 수치는 집계·출처별 편차 있음). 하나의 형태가 막히면 또 다른 형태로 이동하는 저자들의 예언이 현실화되는 모습이다.

책의 제목 "사장님도 아니야 노동자도 아니야"는 수사적 어긋남이 아니라, 13년 전 한국 노동시장이 이름조차 붙이지 못했던 존재를 가리키는 정확한 좌표였다. 저자들은 '쓸 수 있다'와 '쓸 수 없다' 사이에서 어느 한쪽에 답을 내리지 않고, '다시 쓰는 과정' 자체에 주목한다. 1995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설립, 2006년 비정규직 보호법 제정, 2014년 쌍용차 해고자에 대한 시민 연대(노란봉투 캠페인), 2026년 개정 노조법 시행 — 이 모든 것이 '다시 쓰기'의 장면들이다.

이 책이 특히 유효한 대목은 '정책 실패의 역사'를 정리한 부분이다. 2006년 비정규직보호법, 2013년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 2017년 인천공항 정규직화 선언. 각 정책은 일정한 성과를 냈지만,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차별(무기계약직·자회사 고용 등)을 만들어냈다. 법이 대응하면 시장이 우회하고, 시장이 우회하면 법이 다시 대응하는 순환이 30년간 이어졌다. 노란봉투법도 이 순환의 다음 마디일 뿐, 종착역은 아니다.

저자가 마지막 장에서 제시한 '사회적 대화의 재설계' 제안은 2026년 시의적절하다. 그는 "원청·하청·노조·정부의 4자 상설 교섭 체제"를 제안한다. 독일 공동결정법, 프랑스 사회적 대화위원회, 일본의 산업별 노사협의회 등의 한국적 변용이다. 형태는 다양하지만 핵심은 같다. 원·하청의 분리를 법으로만 봉합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 대화의 구조로 바꾸는 것이다.

이번 주 추천 독서: 이병훈·이주환·강은애·홍석범·김종진, 『사장님도 아니야 노동자도 아니야: 특수고용노동자 이야기』(창비, 2013, 292p). 병행 독서로 Guy Standing, 『The Precariat: The New Dangerous Class』(Bloomsbury, 2011), 신광영, 『한국 사회 불평등 연구』(후마니타스, 2013)를 추천한다. 노란봉투법 시행이라는 사건과 이 책을 나란히 읽으면, 2026년 한국 노동사회가 어떤 오래된 지형 위에 서 있는지가 보인다.

41.5%
대기업 정규직 대비 중소기업 비정규직 시간당 임금 수준 (고용노동부 2024년 6월 기준)
47.7%
산업재해 사망사고 중 하청 노동자 비중 (고용노동부 2024년 재해조사 대상 기준)
13.0%
2023년 기준 전체 노조 조직률 — 정규직·비정규직 간 조직률 격차 3배 이상
이 기사를 주목해야하는 이유
1
삼중 격차의 구조

이병훈이 제시한 임금·안전·교섭의 세 격차는 한국 원·하청 이중구조의 가장 간결한 축소판이며, 노란봉투법이 풀어야 할 과제의 전체 지형이다.

2
법-시장의 30년 순환

비정규직보호법·정규직화 가이드라인 등 과거 정책이 만든 새 차별을 복기하면,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에도 외주 우회 현상이 반복될 가능성을 경계하게 된다.

3
4자 상설 교섭의 제안

저자가 제시한 원청·하청·노조·정부의 4자 상설 교섭 체제는, 법적 봉합을 넘어선 '일상적 대화 구조'로의 이행을 구체화하는 참조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