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포르마시옹
EU이민망명협약

EU 이민·망명 협약의 균열, 오르반의 사법재판소 제소가 예고하는 통합의 시험대

차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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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요약
2024년 채택되고 2026년 6월 12일 본격 적용을 앞둔 EU 이민·망명 협약이 시행 전부터 구조적 균열을 드러내고 있다. Eurostat 2026년 1월 기준 독일·프랑스·이탈리아 3국이 망명 신청의 약 54%를 수용하는 반면, 폴란드·헝가리는 분담 결정을 공개적으로 거부했다. 헝가리 총리실은 2025년 12월 EU 사법재판소 제소를 예고했다. EUAA에 따르면 2025년 EU+ 망명 신청은 82만여 건, 2026년 초 중동 위기로 신규 수요가 다시 증가하는 시점에 유럽 통합의 뼈대가 시험받고 있다.

EU가 2020년 9월 집행위 제안 이후 4년 만인 2024년 5월 타결한 '이민·망명 협약(Pact on Migration and Asylum)'은 유럽 통합의 드문 성공으로 평가됐다. 협약은 2024년 6월 11일 발효됐고, 실질 적용은 2026년 6월 12일로 예정돼 있다. 27개 회원국이 난민 수용 책임을 공동 분담하고, 절차를 표준화하는 것이 골자였다. 그러나 2026년 이란 전쟁 발발과 중동발 대규모 난민 발생은, 이 협약을 본격 시행 직전부터 가장 혹독한 시험대에 올렸다. 유럽연합 망명청(EUAA)에 따르면 2025년 EU+ 전체 망명 신청은 약 82만 2천 건으로 2024년 대비 감소했으나, 2026년 초 중동 위기 이후 신청 증가 조짐이 다시 확인된다.

수용 부담은 예상대로 편중되고 있다. Eurostat 2026년 1월 월간 통계 기준 독일 14.9%, 프랑스 18.2%, 이탈리아 20.8%로 3국 합계 약 53.9%가 핵심국에 집중됐다. 반면 폴란드·헝가리·체코·슬로바키아 등 동유럽 '비셰그라드 그룹'은 전체의 3%에 미치지 못한다. 이 격차는 경제 규모·지리적 거리·사회적 수용력의 차이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정치적 선택의 결과다.

가장 명시적인 저항은 헝가리에서 나왔다. 게르게이 굴야시 총리실 장관은 2025년 12월 10일 브리핑에서 "헝가리는 어떤 압력에도 단 한 명의 난민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EU 이민 분담 결정을 공개적으로 거부했다. 오르반 정부는 이후 분담 할당에 대한 유럽사법재판소(ECJ) 제소 방침을 확인했다. 폴란드의 도날드 투스크 총리는 오르반보다는 중도적이지만, 역시 EU의 강제 할당에 대해 "신중한 접근"을 요구하며 사실상 이행을 늦추고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딜레마에 빠졌다. 강제 집행에 나서면 회원국 간 갈등이 격화되고, 방치하면 협약 자체가 무력화된다. 우르줄라 폰 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3월 19~20일 정상회의에서 "연대는 EU의 근본 가치이며, 어떤 회원국도 이를 선택적으로 적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같은 회의에서 오르반과 회원국 일부 지도자들이 공개적으로 이견을 표명하면서, 정상 공동성명에서 '이민' 부분은 모호한 표현으로 처리됐다.

이 분열이 촉발한 정치 지형 변동은 독일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독일대안당(AfD)은 반이민 정서를 내세워 2026년 3월 INSA·FgW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26%로 CDU/CSU와 공동 1위를 기록했다. 사회민주당(SPD)은 13~14%대에 머물러 집권 연정 내에서의 입지가 약화됐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2025년 5월 취임)는 "반이민 정서를 AfD에 내어주지 않기 위해" 이민 정책을 강경 방향으로 선회시켰고, 이는 SPD와의 대연정 구도를 긴장시키고 있다.

프랑스도 유사한 흐름이다. 국민연합(RN)의 마린 르펜은 '프랑스 우선주의'를 내세워 3월 지지율 31%로 1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지지율은 24%로 추락했다. 2027년 대선을 앞두고 프랑스 정계는 중도의 붕괴와 양극단의 확장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다. 네덜란드에서도 헤르트 빌더스의 자유당(PVV)이 2023년 선거 승리 이후 연정 불안을 통해 영향력을 유지한다.

이 정치적 지각 변동은 한국에도 간접적 의미를 갖는다. 첫째, EU의 정치적 불안정은 한-EU 통상 협력의 예측 가능성을 낮춘다. EU의 반도체법·CSRD(기업지속가능성공시지침) 등 핵심 입법의 이행이 회원국별 분열로 늦어지면, 한국 기업의 대응 전략에도 불확실성이 커진다. 둘째, 유럽 우파 포퓰리즘의 부상은 미국 트럼프주의와 결합해 '서구 자유주의 질서'의 후퇴를 가속화한다. 한국은 다자 무역 체제의 주요 수혜국이었기에, 이 변화의 파급이 직접적이다.

EU 이민·망명 협약이 무너지면 두 가지 경로가 가능하다. 첫째, 부분 수정으로 회원국별 이행 유연성을 확대하는 경로. 둘째, 협약 자체가 사문화(死文化)되고 회원국 개별 결정으로 회귀하는 경로. 전자는 협약의 원칙을 약화시키지만 통합의 외형을 유지한다. 후자는 EU의 공동 외교·안보 정책 전반에 파급되는 '통합 후퇴'다. 오르반의 ECJ 제소는 이 두 경로 사이의 문턱에 놓인 결정적 시험대가 된다.

역사적 맥락도 참고가 된다. 2015년 시리아 난민 위기 당시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우리는 할 수 있다(Wir schaffen das)"는 선언은 유럽 통합의 상징적 언어였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2026년, 그 언어를 반복할 정치 지도자는 거의 없다. 메르켈 자신이 2021년 퇴임 후 "이민 정책에서 속도 조절이 필요했다"고 일부 자성을 표한 바 있다. 2015년의 집단 기억이 2026년의 정치적 금기가 된 것이다.

한국 외교부는 유럽 정세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2026년 하반기 한-EU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으며, 반도체·배터리·방위산업 협력 확대가 핵심 의제다. 그러나 EU 내부가 이민 문제로 분열된 상황에서는 한국과의 협력 의제가 뒤로 밀릴 가능성이 있다. 유럽의 '자기 문제'가 커질수록, 한국의 대유럽 레버리지는 줄어든다.

2024년 협약 타결 당시, EU는 "공동의 책임, 공동의 연대"를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2년 후 그 슬로건은 위기의 시험을 맞고 있다. 오르반의 제소가 받아들여지든 기각되든, 이미 드러난 회원국 간 간극은 EU의 통합 프로젝트에 깊은 흔적을 남길 것이다. 유럽의 균열은 국제 질서의 한 축이 흔들리는 신호이며, 한국은 그 여파의 간접 수취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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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프·이 3국 난민 수용 비중(2026.1)
Eurostat, 202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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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AfD 지지율
독일 여론조사, 202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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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EU+ 망명 신청 총계
EUAA, 2025-2026
이 기사를 주목해야하는 이유
1
연대 원칙의 붕괴 위험

폴란드·헝가리의 공식 거부와 오르반의 ECJ 제소는 EU 공동 책임 구조가 사법적·정치적 동시 시험대에 오른 것을 의미한다.

2
우파 포퓰리즘 연쇄

독일 AfD 26%, 프랑스 RN 31% 등 유럽 주요국 우파 정당의 부상은 이민 위기를 통해 정치 지형 전반의 재편으로 이어진다.

3
한국 대유럽 외교의 변수

EU 내부 분열이 심화되면 한-EU 협력 의제(반도체법·CSRD 이행 등)의 우선순위가 밀려, 한국의 대응 전략에 불확실성이 가중된다.


이 기사는 공공 데이터와 언론 보도를 바탕으로 재구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