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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세상을 보다 4월 1째주] 부채는 누구의 책임인가

미안·수피의 『House of Debt』(2014)와 가계부채 1,978.8조 시대의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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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요약
프린스턴대 아티프 미안과 시카고대 부스 비즈니스스쿨 아미르 수피가 2014년 출간한 『House of Debt』(국내 『빚으로 지은 집』, 열린책들)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뱅크 뷰(bank view)'가 아닌 '부채 뷰(debt view)'로 재해석한 책이다. 두 저자는 미국 카운티별 자료 1,500만 건을 추적해, 위기의 진짜 진원지는 월스트리트가 아니라 가계부채에 짓눌린 가구의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이었음을 증명했다. 2025년 4분기 말 한국 가계부채가 1,978.8조 원·GDP 대비 88.6%에 이른 시점, 이 책은 '부채는 누구의 책임이며 정부는 누구를 보호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한국에 다시 던진다.

아티프 미안(Atif Mian)은 프린스턴대 경제학과의 시어도어 A. 웰스 1929년 좌(座) 교수이며, 줄리스-라비노위츠 공공정책·금융센터 소장이다. 아미르 수피(Amir Sufi)는 시카고대 부스 비즈니스스쿨의 시카고상품거래소(CBOT) 좌 교수다. 두 사람은 IMF가 차세대 거시경제학을 이끌 45세 미만 경제학자 25인에 토마 피케티와 나란히 선정한 이론가들이며, 2010년대 가계부채와 거시경제의 관계를 규명한 일련의 논문(QJE·Econometrica·AER 게재)으로 '미안-수피 학파'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House of Debt』는 그들의 학술 작업 10년을 일반 독자에게 풀어낸 232쪽짜리 결산서다.

책의 출발점은 단순한 질문이다. 2008년 금융위기는 '왜 그토록 심각한 소비 붕괴를 동반했는가'. 주류 거시경제학은 위기를 '은행의 자산건전성 훼손 → 신용경색 → 기업투자 위축'이라는 공급측 채널로 설명했다. 그래서 처방도 은행 구제(TARP), 양적완화, 유동성 공급에 집중됐다. 그러나 미안과 수피가 미국 1,500만 건 이상의 ZIP code·카운티별 부채·소비·고용 자료를 분석한 결과는 달랐다. 위기 이전 가계부채가 가장 많이 늘어난 카운티에서 위기 이후 자동차 판매·소비·고용이 가장 많이 무너졌다. 위기는 '은행 문제'가 아니라 '가계 문제'였다.

두 저자는 이 메커니즘을 'Levered Losses(레버리지된 손실)' 모델로 정식화했다. 핵심은 부채 계약의 '비대칭성'이다. 주택가격이 30% 하락하면, 자기자본 비중이 낮은(LTV 90%) 가구는 자산의 100%를 잃지만, 채권자(은행)는 한 푼도 잃지 않는다. 손실의 100%가 가난한 채무자에게 집중되는 구조다. 부(富)가 줄어든 가계는 한계소비성향(MPC)이 높아 곧바로 소비를 줄이고, 줄어든 소비는 다시 고용을 무너뜨려 또 다른 가계의 소득을 줄인다. 부채 계약이 만든 '하방 증폭기'다.

저자들이 책에서 제시한 가장 강력한 정책 처방은 두 가지다. 첫째, 'cramdown(채무 강제조정)'이다. 파산법원이 주택담보대출 원금을 시장가치 수준으로 감액할 수 있게 해 채무자와 채권자가 손실을 분담하게 하는 제도다. 미국에서 2009년 오바마 행정부가 시도했으나 상원에서 부결됐다. 미안과 수피는 만약 이 법이 통과됐다면 미국 GDP는 위기 이후 4~5%포인트 더 빠르게 회복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둘째, 'shared-responsibility mortgage(SRM, 책임분담형 주택담보대출)'다. 지역 주택가격 지수가 하락하면 원리금 상환액이 자동으로 줄어들고, 상승기에는 채권자가 자본이득의 일부(저자들은 5%를 제안)를 가져가는 신형 계약이다. 부채를 '주식과 부채의 중간'으로 재설계해 위기 자체를 예방하자는 발상이다.

2026년 4월 한국의 좌표는 미안과 수피의 분석 틀이 가장 잘 들어맞는 지점에 있다. 한국은행이 4월 9일 발표한 2025년 4분기 자금순환 통계는 1,978.8조 원, GDP 대비 88.6%다. 2021년 정점(98.7%) 대비로는 10%포인트 낮아졌지만, OECD 평균(약 60%)과 비교하면 여전히 세계 최상위권이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구성'이다. 한국 가계부채의 75% 이상이 주택담보대출이며, 이 중 변동금리·일시상환·만기일시 비중이 미국·영국보다 훨씬 높다. 미안과 수피의 모형에 한국을 대입하면, 주택가격이 20% 하락할 경우 자기자본이 음수가 되는 가구 비율은 추정컨대 전체의 18~22% 수준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처방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한국은 2017년 이후 LTV(주택담보인정비율)·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이라는 미시규제 중심 접근을 강화해 왔다. 미안과 수피의 시각에서 LTV·DSR은 '부채의 양적 한도'를 정할 뿐, '부채 계약 자체의 위험분담 구조'는 손대지 못한다. 즉 한도 내에서도 손실은 여전히 채무자에게 집중되는 비대칭 구조가 그대로다. 두 저자가 제안하는 SRM의 한국형 변형, 즉 '주택가격 연동 변동상환형 모기지'를 실험해야 한다는 주장이 한국개발연구원(KDI)·한국금융연구원에서 2024년 이후 본격 제기되고 있다. 2025년 7월 한국은행이 '신(新) 가계부채 DB' 구축을 발표하면서 미안 교수를 자문위원으로 위촉한 사실은, 이 책의 한국 정책 영향력이 여전히 진행형임을 보여준다.

책의 마지막 장에서 미안과 수피가 던지는 질문은 윤리적이다. "부채는 누구의 책임인가, 그리고 정부 정책은 부채 보유자(채무자)와 채권자(은행) 중 누구를 더 보호해야 하는가". 2008년 미국 정부의 답은 '은행'이었다. 자산이 불어났을 때는 가계의 호황을 칭송했지만, 자산이 무너지자 손실은 가계에 떠넘기고 은행은 구제했다. 두 저자는 이 비대칭이야말로 위기를 키운 정치적 선택이었다고 본다. 2024~2025년 한국의 부동산 PF 부실 처리 과정에서, 정부가 시공사·증권사·저축은행에 대한 지원을 우선했고 영끌 차주에 대한 직접적 채무조정은 미루었다는 비판은, 미안-수피의 프레임 안에서 동일한 패턴의 한국판 변주로 읽힌다.

이 책에는 한계도 분명히 있다. 첫째, 미국 데이터에 근거한 '카운티 단위 외부효과' 분석을 그대로 한국에 적용하기 어렵다. 한국은 미국보다 도시화·표준화 수준이 높고, 지역별 주택시장 분절이 약하기 때문이다. 둘째, SRM 같은 신형 계약이 도덕적 해이(채무자의 디폴트 유인)를 키울 수 있다는 비판은 학계에서 여전히 진행 중이다. 셋째, 책이 출간된 2014년 이후 글로벌 가계부채 구조는 '주택담보' 중심에서 '신용·학자금·BNPL(후불결제)'로 다변화됐고, 한국 역시 자영업자 부채·전세대출·청년 신용대출 등 미안-수피 모형 바깥의 위험이 빠르게 커졌다. 책을 한국 맥락에서 읽으려면 이 세 가지 한계를 함께 봐야 한다.

그럼에도 이 책이 2026년 한국에 던지는 통찰은 강력하다. 한국의 가계부채 논쟁은 종종 '거시 총량(GDP 대비 비율)'과 '미시 한도(LTV·DSR)' 사이에서만 진동해 왔다. 미안과 수피는 그 사이에 있는 '계약 구조' 차원, 즉 손실분담의 비대칭성 자체를 어떻게 바꿀지를 묻는다. 한국이 가계부채 88.6%에서 70%대로 내려가는 디레버리징 국면에 들어선 지금, 이 질문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부채를 줄이는 일과 부채의 위험을 분담하는 일은 다른 문제이고, 후자가 더 본질적이다.

이번 주 추천 독서: Atif Mian & Amir Sufi, 『House of Debt: How They (and You) Caused the Great Recession, and How We Can Prevent It from Happening Again』(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14, 232p) / 한국어판 『빚으로 지은 집』(열린책들, 2014, 박기영 옮김, 320p). 병행 독서로 카르멘 라인하트·케네스 로고프 『이번엔 다르다(This Time Is Different)』(다른세상, 2010), 하이먼 민스키 『불안정 경제의 안정화』(한국경제신문, 2014), 한국개발연구원(KDI) 『한국 가계부채의 구조와 거시충격』(2024) 보고서를 추천한다. 미안 교수의 후속작 『The Power of Public Debt』(가제, 2026 예정)도 주목할 만하다.

1,978.8조 원
2025년 4분기 말 한국 가계부채 잔액(한국은행 가계신용 잠정치, GDP 대비 88.6%)
1,500만 건
미안·수피가 위기 분석에 사용한 미국 ZIP code·카운티 단위 부채·소비·고용 자료의 표본 규모
4~5%p
저자들이 추정한 'cramdown(채무 강제조정)' 도입 시 미국 GDP 추가 회복분
이 기사를 주목해야하는 이유
1
'은행 뷰'에서 '부채 뷰'로의 패러다임 전환

2008년 위기 분석을 은행 자산건전성에서 가계 디레버리징으로 옮긴 미안-수피 모형은, 2026년 한국 가계부채 논쟁의 이론적 골격이다.

2
LTV·DSR 너머 '계약 구조' 차원의 정책 의제

한국의 미시규제는 부채의 양을 통제하지만 손실분담의 비대칭은 그대로다. SRM·cramdown 같은 계약 구조 개혁이 다음 라운드의 핵심이다.

3
한국은행 신(新) 가계부채 DB의 이론적 출처

2025년 7월 한국은행이 미안 교수를 자문위원으로 위촉해 구축 중인 '신 가계부채 DB'는 이 책의 카운티 단위 분석 방법론의 한국판 적용 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