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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으로 노년을 나눌 때 미자의 시는 어디에도 기입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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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으로 노년을 나눌 때 미자의 시는 어디에도 기입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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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요약
연금 감액의 문턱이 오르면 통장에 찍히는 숫자는 달라집니다. 그러나 이창동의 「시」가 붙들었던 노년의 다른 얼굴, 잊혀 가는 이름을 붙잡으려 단어를 고르던 한 여자의 시간은 어떤 소득 구간에도 담기지 않습니다.

지난 16일 보건복지부가 국민연금 노령연금의 감액 소득 기준을 상향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튿날인 17일부터 시행됐습니다. 종전에는 월 소득이 319만 3511원 이상이면 노령연금 일부가 깎였지만 이제는 519만 3511원 이상이어야 감액이 시작됩니다. 이른바 A값, 곧 국민연금 전체 가입자의 최근 3년 평균소득월액에 200만 원을 더한 선을 문턱으로 삼은 결과입니다. 감액 구간 다섯 개 가운데 소득이 낮은 두 구간이 사라졌고 2025년 소득분부터 소급 적용됩니다.

숫자만 보면 반가운 소식입니다. 일하는 노년의 손에서 덜어지던 몫이 줄어드니까요. 다만 이 발표를 읽는 동안 오래된 영화 한 편이 자꾸 겹쳤습니다. 노년을 이렇게 소득의 구간으로 정밀하게 나눌수록 그 구간 어디에도 적히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되묻게 하는 영화였습니다.

2010년 이창동 감독의 「시」는 예순 넘은 여자 미자의 이야기입니다. 미자는 손자와 단둘이 살며 몸이 불편한 노인을 돌보는 일로 생계를 잇습니다. 어느 날 미자는 문화원의 시 강좌에 등록하고 난생처음 시를 써 보겠다고 마음먹습니다. 사물을 오래 들여다보고 알맞은 말을 찾는 그 서툰 연습이 영화가 따라가는 축입니다.

그러나 시를 배우는 시간은 두 개의 그늘과 나란히 흐릅니다. 하나는 병원에서 들은 진단입니다. 미자는 단어가 자꾸 떠나가는 것을 느끼고 의사에게서 알츠하이머 초기라는 말을 듣습니다. 하필 언어를 붙잡으려는 순간에 언어를 잃어 가는 병이 찾아옵니다. 다른 하나는 손자입니다. 미자는 손자가 또래 친구들과 함께 한 소녀에게 오래 가해를 저질렀고 그 소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과 마주합니다. 시어를 고르던 손은 감당하기 벅찬 죄의 무게를 함께 들어야 하는 손이 됩니다.

여기서 「시」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한 미담과는 거리가 멉니다. 아름다움을 찾는 일과 죄를 마주하는 일이 한 사람 안에서 어떻게 공존하는가. 미자에게 시는 도피가 아니라 차마 눈감지 못하는 것들을 끝까지 바라보게 만드는 렌즈에 가깝습니다. 미자가 결국 완성해 내는 한 편의 시는 지워져 가는 자신의 언어와 갚을 길 없는 타인의 죽음을 한꺼번에 끌어안은 자리에서 태어납니다.

영화 스틸 — 시

영화 「시」의 한 장면.

이 영화를 소득 기준 이야기 곁에 놓아 보면 제도가 노년에게 건네는 물음과 영화가 건네는 물음이 얼마나 다른지 선명해집니다. 감액 기준을 정할 때 국가가 노년에게 묻는 것은 하나입니다. 당신은 얼마를 버는가. 그 답에 따라 사람은 감액 구간과 비감액 구간으로 나뉩니다. 필요한 행정입니다. 재정은 유한하고 어딘가에는 선을 그어야 하니까요.

문제는 그 선이 노년의 전부인 양 여겨질 때 생깁니다. 미자를 소득으로만 분류한다면 미자는 돌봄 노동으로 얼마 안 되는 수입을 얻는 저소득 노인으로 기입되고 끝납니다. 소득표의 칸에는 미자가 사물의 이름을 다시 배우려 애썼다는 사실이, 손자의 죄 앞에서 무너지지 않으려 버텼다는 사실이, 사라져 가는 기억과 싸우며 끝내 한 편의 시를 남겼다는 사실이 들어갈 자리가 없습니다.

돌봄도 마찬가지입니다. 미자는 돌봄을 주는 노인이면서, 병의 진행과 함께 돌봄이 필요해질 문턱에 선 노인이기도 합니다. 이 이중의 위치는 소득표의 한 줄로는 결코 포착되지 않습니다. 노년을 버는 사람과 못 버는 사람으로만 가를 때 서로를 떠받치는 이 관계의 그물은 통계의 바깥으로 밀려납니다. 519만 원이라는 새 문턱은 그 그물을 두고는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습니다.

존엄이라는 말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감액 기준 완화는 일하는 노인의 손에 조금 더 남겨 주는 정책이고 그 자체로 존엄을 어느 정도 거듭니다. 손에 남는 돈이 늘면 선택의 폭도 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미자가 지키려 한 존엄은 액수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죄까지 외면하지 않고 잊혀 가는 정신으로도 끝까지 한 사람의 몫을 감당하려는 태도의 문제였습니다. 제도가 채워 줄 수 있는 존엄과 제도가 결코 대신 살아 줄 수 없는 존엄은 층위가 다릅니다.

그래서 이번 발표를 폄하할 생각은 없습니다. 매년 적지 않은 이들이 깎이던 연금을 온전히 받게 된다면 그 변화는 분명한 개선입니다. 다만 이런 뉴스를 접할 때마다 노년을 오직 소득 구간으로만 상상하는 습관이 우리 안에 조용히 굳어지는 것은 경계할 일입니다. 통장의 숫자가 개선되는 것과 한 노인의 삶이 온전히 이해받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닙니다.

「시」의 마지막에서 미자의 목소리는 어느새 죽은 소녀의 목소리와 포개집니다. 산 자의 언어가 죽은 자의 자리에 가 닿는 그 순간 영화는 노년이 남기는 것이 잔고만은 아니라고 조용히 일러 줍니다. 새 문턱을 넘은 통장 곁에 어떤 구간으로도 나뉘지 않는 미자의 시 한 편을 나란히 놓아 두고 싶은 오후입니다.

이 기사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
1

연금 감액 기준이 319만 3511원에서 519만 3511원으로 200만 원 오른 6월,

2

소득표의 어느 칸에도 들어가지 않는

3

미자의 시가 노년을 셈하는 우리의 습관에 되묻는 질문.

이 기사의 근거
  • korea.kr(148966620) · 국민연금 노령연금 감액 소득 기준 상향 (2026-06-16)
  • korea.kr(148966620) · 감액 기준 519만 3511원·A값+200만 원
  • korea.kr(148966620) · 감액 구간 폐지·2025년 소득분 소급 적용
  • WebSearch · 「시」 칸 국제영화제 각본상 보도 (2010-05-24)
  • 영화 「시」(2010) 본편 서사
공식 예고편

시 (Poetry) (2010년) — 이창동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