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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4째주 ·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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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축할 수 있는 삶은 누구의 것입니까
영화로 세상을 보다

저축할 수 있는 삶은 누구의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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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요약
정부가 청년미래적금을 내놓았습니다. 지난 6월 22일 문을 열어 7월 3일까지 신청을 받는 이 상품은 매달 얼마씩 꼬박꼬박 넣을 수 있는 청년에게 정부가 웃돈을 얹어 목돈을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미소는 남의 집을 청소해 하루를 버는 가사도우미입니다. 손에 쥐는 돈은 뻔하고 집세는 오르고 담뱃값도 오릅니다. 대부분의 계산법이라면 담배를 끊고 술을 줄이고 방을 지키라고 말할 겁니다. 미소는 반대로 움직입니다. 위스키 한 잔과 담배 한 개비, 그리고 곁을 지키는 사람에게 건네는 마음. 이 세 가지를 남기려 미소는 살던 방을 포기하고 배낭을 멥니다.

가진 것이 적은 사람이 가장 먼저 버려야 할 목록에서 미소는 남들이 사치라 부르는 것들을 맨 뒤에 둡니다. 미소가 지키려는 위스키와 담배는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존엄의 최소 단위입니다. 하루치 노동으로 하루치 삶을 사는 사람에게 오늘 저녁 한 잔의 온기까지 미래를 위해 반납하라고 한다면, 그 삶은 대체 무엇을 위한 삶일까요. 영화는 이 물음을 큰 소리로 외치지 않고 옛 밴드 동료들의 집을 하나씩 찾아가는 미소의 발걸음으로 대신 말합니다.

동료들은 결혼을 했거나 아파트를 샀거나 회사에 매여 있습니다. 겉보기에 미소보다 '자리를 잡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 안온함의 안쪽에는 저마다의 결핍이 웅크리고 있습니다. 미소의 눈에는 그것이 비칩니다. 감독은 누가 옳다고 판정하지 않습니다. 집을 가진 자와 취향을 가진 자를 나란히 세워 우리가 '정상'이라 부르는 삶의 좌표가 실은 얼마나 좁은지 되비출 뿐입니다. 여기까지가 줄거리의 전부이니 그다음은 직접 확인하시길 권합니다.

이 영화를 2026년 여름에 다시 꺼내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청년미래적금이 그리는 미래와 미소가 지키는 현재가 정확히 반대편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자산형성 정책은 오늘을 아껴 내일을 부풀리라 권합니다. 미소는 내일을 미룬 채 오늘을 남김없이 살아 냅니다.

적금은 만 19세부터 34세까지의 청년 가운데 소득과 가구 요건을 갖춘 이들을 대상으로 하며 심사를 거쳐 7월 27일부터 8월 7일까지 계좌를 여는 일정으로 짜여 있습니다. 자산을 형성하려면 먼저 자산으로 돌릴 소득의 여백이 필요합니다. 미소에게는 그 여백이 없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미소는 그 여백을 담배와 위스키로 이미 '지출'하기로 선택한 사람입니다.

영화 스틸 — 소공녀

영화 「소공녀」의 한 장면.

여기서 정책과 영화가 갈라집니다. 청년미래적금은 성실히 넣는 사람에게 보상을 얹어 줍니다. 널리 알려진 안내에 따르면 유형과 요건에 따라 납입액의 6% 또는 12%가 정부 기여금으로 붙는다고 합니다. 월 납입 한도와 만기, 우대 금리 같은 세부 조건은 기관별 안내로 확인할 몫이라 여기서 단정하지는 않겠습니다. 구조의 뼈대는 또렷합니다. 넣을수록 돌려받고, 못 넣으면 그 혜택의 바깥에 서게 됩니다.

문제는 '못 넣는' 자리에 선 사람이 결코 게으르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미소는 가사도우미로 하루하루 일합니다. 그런데도 매달 떼어 둘 몫이 남지 않습니다. 자산형성 정책의 언어는 '저축하지 않는 청년'을 은근히 나무라는 쪽으로 기울기 쉽습니다. 저축하지 못하는 처지와 저축하지 않는 태도는 전혀 다른데도 말입니다. 「소공녀」는 그 둘 사이의 깊은 골을 미소의 배낭 하나로 보여 줍니다.

물론 적금 자체를 탓할 일은 아닙니다. 넣을 여력이 있는 청년에게 정부가 웃돈을 얹어 주는 제도는 그 나름의 쓸모가 분명합니다. 그 쓸모가 닿지 않는 사각지대도 그 옆에 있습니다. 미래를 위한 저축이 가능한 삶은 이미 어느 정도 안정된 삶입니다. 정책의 온기가 가장 필요한 이들은 종종 그 문턱 바깥에 서 있습니다.

미소의 선택을 낭만으로 미화할 생각은 없습니다. 배낭을 멘 삶은 낭만이 아니라 한파이고 고단함입니다. 그러나 미소가 끝내 놓지 않은 위스키 한 잔은 오늘을 오늘답게 살 권리를 미래에 담보 잡히지 않겠다는 조용한 선언으로 읽힙니다. 자산은 내일의 나를 위한 준비입니다. 존엄은 오늘의 내가 지금 누리는 것이니까요.

그러니 청년미래적금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는 두 개의 질문이 함께 놓입니다. 하나는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청년이 이 통장을 채울까'입니다. 다른 하나는 '통장을 채울 수 없는 삶은 이 사회에서 어떤 자리를 얻는가'라는 물음입니다. 앞의 질문만 남고 뒤의 질문이 지워질 때 미소 같은 사람들은 통계의 바깥으로 조용히 밀려납니다.

영화의 마지막, 미소는 여전히 어딘가를 걷습니다. 집을 잃는 동안에도 손에서 놓지 않은 담배 한 개비가 그 뒷모습에 남아 있죠. 그 장면 위로 청년미래적금 안내문을 다시 펼쳐 보면, 거기 적힌 미래는 분명 따뜻한데 그 문으로 들어서려면 오늘 저녁의 한 잔부터 반납하라는 조건이 먼저 붙습니다. 미소가 끝내 거절한 게 바로 그 반납이었으니까요. 저축이 미덕이라는 말을 꺼내기 전에, 무엇을 접어야 저축이 가능한 삶인지, 그 계산서가 애초에 누구 앞으로 날아왔는지를 이 여름의 통장 앞에서 우리는 아직 묻지 못했습니다.

이 기사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
1

자산형성 정책의 성패를 '가입률'이 아니라 '가입할 수 없는 사람'의 자리로 되짚는 관점입니다.

2

저축하지 못하는 처지와 저축하지 않는 태도를 가르고, 미소가 집 대신 지킨 위스키·담배를 '존엄의 최소 단위'로 재정의해,

3

청년미래적금이 전제하는 '저축 가능한 삶' 자체를 심문합니다.

이 기사의 근거
공식 예고편

소공녀 (Microhabitat) (2017년) — 전고운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