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문화예술패스, 절반 가까이 쓰이지 않았다
19세 청년들에게 공연·전시 관람비를 최대 15만 원까지 지원하는 청년문화예술패스 사업이 도입 첫해부터 저조한 실적으로 우려를 낳았다. 2024년 상반기 기준 청년문화예술패스 이용 현황을 보면, 전체 대상자의 약 절반이 한 번도 패스를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올해 청년 113,180명에게 약 148억 원 규모의 관람 포인트를 지급했지만, 7월 말까지 사용된 금액은 약 21억 원에 불과해 전국 평균 이용률 14.3%에 머물렀다. 특히 제주(9.1%), 경북(9.5%), 전남·부산(각 9.6%) 등 일부 지역의 이용률은 10%에도 못 미치는 최저 수준으로 나타났다.
결국 6월 말까지 패스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청년들의 지원금은 환수되어 다른 청년들에게 재배분되었으며, 이로 인해 약 절반에 가까운 예산(약 160억 원)이 미집행으로 남는 상황이 벌어졌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미사용 사태의 배경으로 △청년들이 선호하는 문화콘텐츠 배제 △공연·전시 인프라의 지역 편차 등을 지목하고 있다. 실제로 해당 패스는 영화 관람이나 대중음악 콘서트에 사용할 수 없었는데, 이는 청년층이 가장 즐겨 찾는 분야를 제외한 것이어서 사업 설계부터 청년 취향을 외면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공연·전시 산업의 수도권 집중 심화
청년문화예술패스의 저조한 이용률 이면에는 수도권 중심으로 치우친 문화공연·전시 환경이 자리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연예술통합전산망 통계에 따르면, 2024년 상반기 전국 공연의 64%가 수도권(서울·경기·인천)에 집중되어 있었다. 수도권에서 발생한 공연 티켓 판매액은 전국의 78.2%에 달해 매출 면에서도 서울 등지 쏠림 현상이 두드러졌다.
다른 지역 중에는 부산·대구·울산 등이 포함된 경상권이 공연 건수 19.6%, 판매액 12.9%로 뒤를 이었을 뿐, 그 외 권역들은 미미한 비중을 차지했다. 전시 산업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전국 문화기반시설의 36.3%가 수도권에 편중되어 있고, 특히 미술관의 41.5%가 수도권에 몰려 있을 정도로 전시 분야의 수도권 편중이 심각하다.
실제로 2022년 한 해 서울에서 개최된 시각예술 전시가 6,699건에 달해 전국에서 가장 활발했는데, 이는 전국 전시 건수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수치다. 문화시설의 지역 불균형과 문화행사의 서울 집중 탓에, 지방 청년들은 지원금을 받아도 정작 주변에서 즐길 공연이나 전시를 찾기 어려운 구조인 셈이다.
지역문화지수와 기반시설 분포로 본 문화 격차
문화 인프라와 향유 수준의 지역 격차는 정부 통계 지표에서도 뚜렷이 드러난다. 지역문화지수에 따르면, 수도권의 수치는 0.292인 반면 비수도권은 -0.118로 큰 차이를 보였다. 이 지수는 각 지자체의 문화정책·자원·활동·향유 수준을 종합한 값으로, 수도권이 문화 여건에서 전반적으로 우위를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전국 등록 문화시설(공연장·박물관·미술관 등)의 약 36%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고, 세부적으로 보면 도서관의 43.4%, 미술관의 41.5%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 반면 지역에 따라 문화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한 곳도 많아, 인구 10만 명당 문화시설 수는 서울 5.0개, 경기 4.6개 수준인 반면 강원 16.2개, 제주 18.7개로 오히려 농어촌 지역이 높게 나타나는 역설적인 통계도 있다.
이는 대도시권 인구가 많아 인구 대비 시설은 적게 계산되는 반면, 농촌 지역은 인구가 적어 작은 시설 몇 곳으로도 수치가 높게 산출되는 착시 효과로 해석된다. 결국 시설의 질과 규모, 프로그램 내용 면에서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는 여전히 크며, 문화향유 기회에서도 도시와 읍·면 지역 간 10%포인트 이상의 참여율 차이가 지속되고 있다.
수도권 쏠림이 청년 문화접근성에 미치는 영향
이러한 공연·전시의 수도권 집중 현상은 청년문화예술패스의 지역별 이용률 격차로도 이어지고 있다. 서울 등 수도권 거주 청년들은 비교적 다양한 공연·전시를 가까이서 접할 수 있어 패스 활용도가 높았지만, 문화행사가 드문 지방 청년들은 지원금을 받고도 쓸 곳이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실제 예산 집행률을 보면, 서울이 45%로 가장 높고 인천 38%, 세종 40% 등 수도권 및 일부 도시 지역은 3040%대를 기록했다. 그러나 나머지 13개 시·도의 예산 소진율은 1020%대에 불과해 상당수 지방 청년들이 패스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제주·경북 등은 이용률이 10%도 되지 않을 만큼 지역별 편차가 극심했다.
문화 인프라의 부족과 이동의 제약으로 지역 청년일수록 공연 한 번 보려면 먼 도시로 원정을 가야 하는 현실이 패스 미사용으로 직결된 것이다. 게다가 사업 설계 상의 한계로 영화관람이나 인기 대중음악 공연 같은 청년 선호 콘텐츠는 아예 제외되어 있었는데, 이런 요소도 지방 청년들의 문화예술패스 체감도를 떨어뜨린 요인으로 꼽힌다.
지역 청년 문화향유 확대를 위한 대안 모색
청년들의 문화적 권리가 거주 지역에 따라 제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정책적 보완책과 대안적 접근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 문화 인프라 공급의 분산 노력이 요구된다. 정부는 최근 “지방시대 지역문화정책 추진전략”을 통해 수도권에 집중된 국립문화시설을 지방으로 이전·신설하고 국립 예술단체의 지역 순회공연·전시를 확대하겠다는 방안을 내놓았다.
실제로 국립오페라단·발레단·합창단 등의 지역 순회공연을 작년 81개 지역에서 올해 101개 지역으로 25% 늘리고, 서울에 있는 국립민속박물관을 세종시로 이전하는 등의 계획이 추진 중이다. 또한 일상 속 ‘15분 문화생활권’을 조성한다는 목표로, 지역의 서점·갤러리·카페·공방 등 생활 공간 3,407곳을 동네 문화공간으로 전환하여 주민들이 걸어서 15분 안에 문화활동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사업도 진행 중이다.
정부는 이러한 동네 문화거점을 2027년까지 1만 곳으로 대폭 늘리고, 지역 작은 서점 80여 곳에서의 문화 프로그램과 지역 갤러리·유휴 전시공간 60여 곳에 시각예술 콘텐츠 제공을 지원할 방침이다.
이용률이 저조했던 청년문화예술패스 사업 자체에 대해서도 다각도의 개선안이 논의되고 있다. 사업 대상과 사용처를 넓히는 방안이 대표적이다. 현재 19세 한 해에만 지원되는 패스를 청년층 전반으로 연령을 확대하고, 공연 장르도 영화·대중콘서트 등으로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는다. 전문가들은 “이용 연령 늘리고, 공연 장르 확대해야 한다”고 조언하며, 청년들의 문화 수요에 부합하도록 사업을 재설계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아울러 지역 청년들의 경제적·지리적 장벽을 낮추기 위한 지원도 거론된다. 이동비용 보정을 통해 수도권 원정 관람에 대한 교통·숙박 지원을 검토하거나, 반대로 지역에서 자체적으로 문화콘텐츠를 기획·유치할 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 등이 제시된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는 지역의 작은영화관과 연계하여 영화 관람도 패스로 가능하게 하고, 지방비 매칭 비율을 조정해 지역이 자율적으로 프로그램을 마련할 수 있도록 유연성을 높이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결국 청년 문화복지의 지역격차 해소를 위해서는 공급자 중심의 인프라 재배치와 함께 수요자 맞춤형 지원이 병행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문화 관람이 수도권 청년의 특권이 아닌, 전국 모든 청년의 일상이 되기 위해서는 지역의 문화 기반을 튼튼히 하는 동시에, 현재 시행 중인 문화패스 정책의 범위와 운영 방식을 청년들의 현실에 맞게 개선할 필요가 있다. “지역 주민의 문화만족도가 높아져야 지역소멸을 막을 수 있다”는 정부의 다짐처럼, 문화 향유의 균형 발전이야말로 청년층을 비롯한 국민 삶의 질 격차를 줄이는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