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제강이 이사회 운영 전반을 스스로 평가하는 제도를 도입한다. 철강업계 주요 기업이 이사회 자체평가에 나서는 것은 이례적이다. 최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강화 흐름 속에서 대기업들이 지배구조 개선에 본격적으로 나서는 신호로 읽힌다.
동국제강은 2025년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통해 이사회 역할 강화를 중대성 평가 11위 항목으로 올렸다. 전년보다 8계단 상승한 순위다. 이는 단순히 보고서상 순위 변화가 아니라 실제 이사회 운영 방식을 바꾸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이사회 자체평가는 이사들이 자신들의 활동과 성과를 스스로 점검하는 제도다. 평가 항목에는 이사회 구성의 적정성, 독립성, 전문성, 회의 운영의 효율성 등이 포함된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보편화됐지만 한국 기업들은 여전히 도입을 꺼리는 분위기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 따르면 국내 상장사 중 이사회 평가를 실시하는 기업은 전체의 15%에 불과하다. 특히 제조업 분야는 10% 미만으로 더 낮다. 동국제강 같은 전통 제조업체가 이런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업계에 상당한 압박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재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이사회가 형식적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 주주행동주의 확산과 ESG 평가 강화로 실질적인 견제 기능이 요구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해 국내 주요 기업들의 주주총회에서 이사 선임 안건 부결 사례가 10건을 넘었다. 2020년 3건에서 3배 이상 늘었다. 기관투자자들이 이사회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따져 반대표를 던지는 일이 늘고 있다.
동국제강의 이번 결정은 같은 업종인 포스코, 현대제철 등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포스코는 이미 2022년부터 이사회 평가를 실시하고 있지만, 평가 결과를 공개하지 않아 실효성 논란이 있었다.
다만 이사회 자체평가가 실질적인 지배구조 개선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평가 기준과 방법, 결과 활용 방안이 구체적으로 마련되지 않으면 또 다른 형식적 절차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기업지배구조 전문가는 "평가 결과를 이사 재선임이나 보수 결정에 반영하는 등 실질적인 인센티브 체계와 연계해야 한다"며 "외부 평가 기관을 활용하는 것도 객관성 확보 방안"이라고 조언했다.
동국제강이 이사회 자체평가를 어떻게 설계하고 운영할지가 관건이다. 단순히 ESG 점수를 올리기 위한 방편이 아니라 실제 경영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